[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에 3나노미터 반도체 경쟁이 시작됐다.
3나노미터 반도체라는 것은 그 회로의 폭이 3나노미터(10억분의 1) 수준으로 얇아졌다는 뜻이다. 사실 반도체는 회로 폭은 20나노미터 이후로 거의 줄지 않고 있기 때문에 속도와 전력소비를 3나노미터급으로 끌어올렸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반도체는 웨이퍼라고 하는 실리콘(규소) 원판에 여러개의 회로를 그린 뒤 초콜릿처럼 분할하는 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회로가 얇아질수록 한 공정에 많은 반도체를 찍어낼 수 있다.
더 작은 반도체 등급으로 갈수록 소모 전력은 줄고 전기신호가 빨라져 작고 고성능의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고객들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이런 3나노미터 반도체를 2022년부터는 삼성전자가 최초로 양산한다고 밝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듯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애플, 인텔, 퀄컴, 미디어텍, 엔비디아 등 굵직굵직한 고객들을 TSMC가 싹쓸이하고 삼성전자는 중국의 이름 모를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고 해 씁쓸함을 안기고 있다.
IT 관련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TSMC가 검증된 핀펫 공정을 고도화해 승기를 잡았다는 판정을 내린다.
기존 기술을 고도화해 3나노미터급 성능은 물론 가격과 품질까지 챙겼다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성능 측면에서는 진보한 GAA펫 공정을 구현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가격과 품질을 잡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핀펫이나 GAA펫이 무슨 뜻인지 알아보면 둘 다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3차원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리콘 원판에 전기회로는 어떤 식으로 그리고 전기흐름을 껐다 켰다 할 스위치는 어디 놓을 지를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합의를 통해 정해둔 것이다.
초창기에는 반도체 회로를 2차원 평면에 그렸는데 업계가 소형화를 거듭해 회로 폭이 20나노미터로 줄어들자 간섭과 누수가 발생하는 등 전기의 흐름을 제어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때부터는 단순히 크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를 3차원으로 쌓아올리면서 성능을 확보하는 쪽으로 선회으며 최근까지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채택해온 3차원 디자인이 바로 핀펫이다.
핀펫 구조는 기존의 2차원 평면회로를 3차원 요철 형태로 세운 뒤 이것을 제어부 역할을 하는 게이트로 감싼 것이다. 회로와 게이트가 닿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제어능력이 높아졌으며 모양이 물고기 지느러미 같다고 해 핀(FIN)펫으로 부른다.
하지만 이 핀펫도 반도체 성능이 10나노미터 수준이 되자 한계를 드러냈고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등장한 다음 주자가 바로 ‘글로벌올어라운드펫’ 또는 ‘GAA펫’이다.
GAA펫은 실리콘 회로를 브릿지 형태로 띄운 다음 이를 게이트가 360도로 둘러싸 접촉면적을 넓힌 것이다. 제어능력이 훨신 좋아져 앞으로 나올 2나노미터나 1나노미터급 반도체의 성능도 제어할 수 있다고 한다.
2차원보다 복잡하기는 해도 소재를 쌓아가면 됐던 핀펫과 달리 GAA펫은 텅빈 공간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된다.
실제로 세부공정을 살펴보면 마치 웨이퍼 위에 작은 건물을 짓는 수준의 난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원판 위에 실리콘 결정을 화학적으로 돋아나게 한 뒤 필요없는 부분을 플라즈마 가스로 녹여가며 형태를 빚는다. 마지막에는 브릿지에 원자 수준으로 얇은 절연층을 씌워야 한다.
여기에는 나노미터(10억분의 1) 보다 작은 옹스트롬(100억분의 1) 수준의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고 불량률도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수율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는 이 공정의 수율이 10%~20% 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와 비교해 핀펫 공정을 고도화한 TSMC는 3나노미터 공정의 수율이 80%라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두 회사는 경쟁이 전혀 되지 않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앞으로 약 3년 정도는 TSMC가 고성능 반도체 위탁생산시장을 독점할 것으로 본다. 3년이라고 하는 이유는 2025년부터는 글로벌 반도체업계가 2나노미터 수준의 반도체 양산에 나서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TSMC도 GAA펫 공정에 뛰어든다.
TSMC가 GAA펫으로 갈아타는 시점까지 삼성전자가 신공정을 얼마나 가다듬느냐가 두 회사 반도체사업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몇 년을 통째로 날릴 수 있는 승부수를 건 까닭은 파운드리 시장을 둘러싼 시장환경이 바뀌고 때문일 것이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의 파운드리 전문기업 TSMC가 주도하고 있다. TSMC는 1987년부터 쌓아온 업력을 바탕으로 기술과 생산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특히 고성능 반도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간신히 경쟁구도를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최근 강대국들이 잇따라 반도체 주권 확보에 나서면서 2등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흘러나온다.
미국에서는 인텔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파운드리 시장 재탈환에 나섰다. 아직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이 1%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100조 원 이상을 파운드리에 투자해 미국과 유럽 반도체 수요를 싹쓸이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중국 파운드리 기업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한다는 목표로 반도체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2022년 1분기에는 중국 파운드리기업들의 글로벌 점유율 합이 처음으로 10% 넘어서면서 파운드리 업계에 경종을 울렸다.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GAA펫 공정을 남들보다 일찍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삼성전자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물론 거인 TSMC를 역전하는 발판이 돼 줄 지도 모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19년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등을 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는데 이 회장의 말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겠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