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위기감이 삼성전자와 협력 불렀다, 애플 AMD 공세에 동맹 강화

▲ 인텔 미국 오리건주 반도체공장.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삼성전자와 시스템반도체 설계 및 파운드리,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 협력을 논의한 배경을 두고 인텔의 위기감이 점차 수면 위에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과 AMD 등 경쟁사가 시스템반도체 기술력을 크게 끌어올리며 인텔의 PC와 서버용 반도체사업을 위협하자 인텔이 삼성전자와 동맹을 강화해 대응하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31일 블룸버그 등 외국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인텔은 시스템반도체시장에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사들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인텔은 데스크톱과 노트북, 서버 등에 쓰이는 CPU시장에서 장기간 독보적 시장 지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애플과 AMD의 공세로 점유율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x86아키텍처 기반 CPU시장에서 AMD의 점유율은 25.6%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텔의 점유율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는 의미다.

ARM아키텍처 기반 제품을 포함한 전체 소비자용 PC CPU시장에서 애플 ‘M1’프로세서 점유율은 지난해 9.5%로 추정됐다. 2020년 3.4%에 그쳤던 것과 비교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x86아키텍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PC와 서버용 CPU에 사실상 유일하게 쓰이던 반도체 설계 기반이다. 인텔이 수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시장을 사실상 독식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그래픽반도체(GPU)를 전문으로 하던 AMD가 x86 기반 PC와 서버용 CPU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뒤 수 년 만에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해 인텔의 수요를 빼앗으며 무시할 수 없는 경쟁사로 성장했다.

애플은 2020년에서야 모바일 프로세서에 쓰이던 ARM아키텍처를 활용한 PC용 프로세서 M1 프로세서를 선보이고 맥북과 아이맥, 맥미니 등 자체 PC 라인업에 이를 탑재해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바일 전용 반도체 설계 기반의 한계를 기술력으로 극복하고 인텔 CPU보다 뛰어난 성능과 전력 효율을 내는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면서 인텔의 PC용 프로세서 수요를 대체하고 있다.

AMD와 애플이 지금과 같은 기술 발전 속도를 유지해 인텔의 서버와 PC용 CPU 경쟁력을 앞서 나간다면 인텔은 사실상 손을 놓고 반도체 판매량 감소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30일 한국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전자 경영진을 만난 것은 이런 위기감을 반영해 다급하게 대응 전략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AMD와 애플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기술력을 높일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반도체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대만 TSMC의 파운드리 미세공정 기술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인텔이 미세공정 기술 개발에 수 년째 어려움을 겪는 사이 TSMC의 공정 기술력이 인텔을 월등하게 앞서 나가면서 고객사 반도체 성능 향상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뒤늦게 이런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겔싱어 CEO를 선임하고 반도체 파운드리사업에 진출해 미세공정 기술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놓는 등 대대적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당분간 인텔에서 선보이는 신형 CPU를 직접 생산하는 대신 TSMC의 최신 공정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방안도 결정됐다.
인텔 위기감이 삼성전자와 협력 불렀다, 애플 AMD 공세에 동맹 강화

▲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공장.

그러나 애플과 AMD는 TSMC와 더 오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앞선 미세공정 기반의 반도체 생산 물량 확보나 단가 등 측면에서 인텔보다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인텔이 결국 이런 현실을 고려해 파운드리 미세공정 기술력에서 TSMC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손을 잡는 방안을 고려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및 차세대 메모리 분야 협력 강화는 인텔의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잠재력이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뿐 아니라 이를 고성능 메모리반도체와 연계해 시너지를 내는 기술, CPU 성능을 끌어올리는 반도체 패키징 기술 등 측면에 모두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기와 같은 계열사도 인텔 고성능 CPU에 쓰이는 FCBGA(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 반도체기판 분야에서 경쟁력을 앞세우고 있어 인텔과 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인텔이 삼성전자와 동맹 강화를 통해 AMD와 애플의 추격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파운드리 등 분야에서 대형 고객사인 인텔과 협력 확대를 통해 성장 기회를 얻는 ‘윈-윈’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두 회사의 협력 관계가 반도체 설계기술 등 분야까지 확장되면 삼성전자의 약점으로 꼽히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역량을 높이는 시너지 효과도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은 이전에도 삼성전자와 DDR5 규격의 고성능 D램 활용, 삼성전자 노트북 제품 경쟁력 강화, 차량용 반도체 및 인공지능 기술 개발 등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협력해 왔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