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펀드(PEF)가 시멘트업계의 주역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업계 1위 쌍용양회와 5위 라파즈한라시멘트가 국내 사모펀드를 새 주인으로 맞이한다.
사모펀드의 시멘트업계 진출이 업계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글랜우드, 라파즈한라시멘트 인수로 시멘트업계 입성
18일 업계에 따르면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의 차남인 이상호 대표가 이끄는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가 6300억 원에 라파즈한라시멘트 인수를 확정해 시멘트업계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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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호 글랜우드투자자문 대표. |
이 대표는 2014년 NHPE와 컨소시엄을 이뤄 동양매직 인수를 성사했는데 이번에 2배 이상의 인수계약에 성공했다.
이 대표는 동양매직과 마찬가지로 과거 동양그룹의 계열사였던 동양시멘트를 통해 시멘트업계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 대표는 지난해 동양시멘트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라파즈한라시멘트를 전략적투자자(SI)로 유치했다. 이 대표는 라파즈한라시멘트에 유상증자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이 자금을 토대로 라파즈한라시멘트가 동양시멘트 지분의 인수주체가 되는 인수구조를 짰다. 인수가 성사된다면 라파즈한라시멘트와 동양시멘트 두 곳의 시멘트회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원이 컨소시엄 대표인 글랜우드가 지분을 직접 취득하지 않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예비입찰에서 컨소시엄 대표가 라파즈한라시멘트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결국 글랜우드 컨소시엄은 본입찰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대신 파트너인 라파즈한라시멘트를 인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라파즈한라시멘트의 대주주인 프랑스 라파즈홀심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라파즈홀심은 해외 자회사 가운데 현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곳들을 정리하려고 했다. 동양시멘트 인수가 이뤄지면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으나 인수가 무산되면서 사실상 한국시장 철수가 확정됐다.
그러자 이 대표는 인수를 제안했고 협상 끝에 라파즈한라시멘트를 품에 안았다.
라파즈한라시멘트는 상위 7개 시멘트회사 가운데 유일하게 비상장기업이다. 과거 한라시멘트는 한라그룹이 해체되면서 영업권이 해외기업에 넘어가 상장폐지됐다. 국내 사모펀드가 라파즈한라시멘트 영업권을 되찾아 오면서 재상장 가능성도 점쳐진다.
◆ 시멘트업계 1위 굳힌 한앤컴퍼니
시멘트업계에 진출한 사모펀드는 글랜우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상원 대표가 이끄는 한앤컴퍼니는 올해 1월 시멘트업계 1위인 쌍용양회 채권단과 주식매매계약을 맺었다. 이르면 3월 안에 인수를 마칠 것으로 보인다.
한앤컴퍼니는 아직 거래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윤여을 한앤컴퍼니 회장과 이동춘 한앤컴퍼니 전무 등을 쌍용양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그만큼 인수 의지가 대단하다.
한상원 대표는 이미 시멘트업계에서 탄탄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한 대표는 2012년 대한시멘트를 인수하고 쌍용양회 지분 9.3%를 취득했다. 또 유진기업 광양공장(현 한남시멘트)도 인수했다.
대한시멘트와 한남시멘트는 시멘트시장의 주력인 포틀랜드시멘트가 아니라 슬래그시멘트를 생산한다. 하지만 두 곳을 합한 시장점유율은 5% 정도로 상위 7개 제조사가 90%에 이르는 점유율을 장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 대표는 2014년 슬래그시멘트 원료인 슬래그파우더 제조사인 포스화인을 68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멘트업계에 계속 투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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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 |
한 대표는 지난해 동양시멘트 인수를 시도했다. 하지만 8천억 원이라는 높은 금액을 제시한 삼표 컨소시엄에 밀려 경영권 지분 인수에 실패했다.
한앤컴퍼니는 대신 동양인터내셔널이 보유한 소수지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그러나 한 대표는 경영권을 확보하지 않는 지분 취득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인수를 포기했다.
한 대표는 동양시멘트 인수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오히려 더 큰 매물인 쌍용양회 인수에 나섰다. 한앤컴퍼니는 쌍용양회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매각협의회에 속해 있었는데 예비입찰에서 인수 후보로 돌아섰다.
쌍용양회 매각 과정에서 2대 주주인 태평양시멘트가 경영권 분쟁을 제기하면서 일부 후보들은 본입찰을 포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인수전을 완주했고 결국 한일시멘트와 맞대결에서 승리해 쌍용양회를 품에 안았다. 주주로서 쌍용양회 사정에 더 밝았던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사모펀드의 경영참여, 시멘트업계 체질 개선되나
시멘트업계 점유율 상위 회사들이 새 주인을 찾으면서 시멘트업계 재편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국내 시멘트시장은 점유율 20%가량인 쌍용양회를 필두로 한일시멘트, 성신양회, 동양시멘트, 라파즈한라시멘트, 아세아시멘트, 현대시멘트 등 일곱 개 회사가 모두 10%대 점유율로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만약 한 곳이 다른 곳을 인수할 경우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라서며 판도를 크게 좌우할 수 있는 구도였다. 이 때문에 업계 2위인 한일시멘트는 동양시멘트와 쌍용양회 인수전에 잇따라 참가하며 업계 재편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시멘트는 레미콘회사인 삼표그룹에, 쌍용양회와 라파즈한라시멘트는 사모펀드에 차례로 매각됐다. 시멘트업계 내에서 인수가 이뤄지지 않아 업계 순위에 큰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모펀드의 시멘트업계 진출은 업계 체질개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점체제가 고착된 시멘트업계에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앤컴퍼니는 시멘트시장의 점유율을 25% 수준까지 끌어올리면서 업계 1위 지위를 강화했다. 여기에 대한시멘트와 한남시멘트 경영노하우까지 있어 단순히 재무적투자자로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시멘트 업계 1위인 한앤컴퍼니에 대항하려면 다른 기업들은 합종연횡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글랜우드의 경우 라파즈한라인수를 계기로 다른 기업들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2~3위인 한일시멘트와 성신양회 등이 물망에 오른다.
사모펀드의 참여가 시멘트업계 담합을 끊어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전까지 시멘트업계는 과점체제가 지속되면서 가격 담합 등의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공정위는 지난해 적발된 시멘트업계 담합에 대해 사상 최대 과징금인 약 2천억 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모펀드가 경영에 개입하면 담합 발생 가능성은 적어질 것”이라며 “업체간 전략적 협력, 레미콘업계와 협상력 강화 등 시멘트업계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여기에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경영효율화와 감산 등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떠오른다.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금이 구조조정의 적기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시멘트업계는 국내 주택건설 경기의 호조와 시멘트 원료인 유연탄 가격의 인하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건설 경기가 다시 둔화조짐을 나타내고 있고 유연탄 가격과 연동되는 유가도 바닥을 치고 반등 가능성이 있어 실적 불확실성이 제기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