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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왼쪽) 현대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
해운업이 장기 부진에 빠지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위기에 몰린 지 오래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자산매각과 사업재편 등 자구노력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물동량 감소와 공급과잉, 운임 하락에 발목이 잡혀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대규모 손실이 이어지면서 자본이 줄고, 차입금이 점점 늘어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글로벌 해운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두 회사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만한 마땅한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유동성 위기를 넘기더라도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 부채비율 낮추는 사이 경쟁력 악화
25일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잇달아 자산매각에 나서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두 회사의 자구 노력만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단기 유동성 위기를 넘긴다 해도 장기적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부회장은 최근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자산매각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해운사가 주요 자산을 계속 매각하면 경쟁력이 약화되는 악순환 구조가 되풀이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현대상선이 IMF 사태 이후 자동차선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핵심 동력을 상실했다”며 “자동차선부문이 팔리지 않았다면 현대상선 내에서 막대한 현금을 창출하는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09년 이후 자구 노력을 통해 5조 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전용선부문과 LNG사업, 부산신항 등 성장동력을 모두 처분한 결과다.
그러는 사이 두 회사의 경쟁력은 점차 떨어졌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초대형 선박을 늘리면서 비용 절감에 힘쓰는 동안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투자 여력이 없어 초대형 선박을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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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 모습. |
글로벌 해운사들은 컨테이너선은 1만9천 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급, 벌크선은 30만 톤 규모로 대형화를 서두르고 있다.
국내 해운사의 경우 한진해운이 1만3천 TEU급 컨테이너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1년에 인도받은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박이 대형화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해운사들은 높은 금리와 자금 부족 등으로 초대형 선박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보유한 선박 대부분을 매각하고 빌린 배를 운용하면서 용선료 부담도 늘었다.
특히 현대상선은 해운업이 호황이던 2007~2008년에 높은 가격으로 용선료 계약을 맺으면서 지금도 시세보다 5~10배 더 많은 용선료를 내고 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용선료로 2조 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 해운업황 여전히 캄캄
해운업황 회복도 요원하다.
해운업 경기동향의 지표인 벌크선운임지수(BDI)는 300대에 머물고 있다. BDI는 이달 중순 290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BDI는 석탄이나 철광석 등 원자재와 곡물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지수다. 무역 거래가 많으면 지수가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 내려간다.
BDI는 해운업 호황기였던 2008년 5월에 사상 최고치인 1만1800까지 올랐지만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BDI가 바닥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물동량은 감소했지만 벌크선은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항상 일정하게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탓에 사이클 산업으로 불린다. 그러나 2008년 이후 7년 넘게 불황이 이어지면서 사이클이 무너진 상황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물동량이 늘어나지 않고 있어 공급뿐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회복이 불투명하다”며 “기존 사이클을 벗어난 구조적 어려움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해운시장 재편에도 도태되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글로벌 해운업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다.
전 세계 해운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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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 |
지난해 12월 중국 양대선사인 중국원양운수그룹(COSCO)과 중국해운그룹(CSCL)이 합병했다. 세계 3대 해운사인 프랑스 CMA-CGM도 싱가포르 선사 APL을 인수했다.
초대형 인수합병으로 해운사들이 순위 경쟁을 벌여나가면 운임이 더욱 내려가게 된다. 초대형 해운사가 자금력에 힘입어 운임을 낮추면 경쟁사도 이에 맞춰 운임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운업 내부의 동맹도 재편되고 있다.
세계 해운동맹은 머스크와 MSC가 결성한 ‘2M’, 현대상선이 포함된 ‘G6’, CMA-CGM과 UASC 등이 연합한 ‘O3’, 한진해운이 포함된 ‘CKYHE’ 등 4대 동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4대 동맹체제의 점유율은 80%를 넘는다.
그러나 최근 동맹체제를 넘어선 인수합병이 진행되면서 동맹체제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CMA-CGM와 에버그린, COSCO, OOCL 등 중대형 컨테이너 해운사 4곳이 새로운 해운동맹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이백훈 현대상선 사장은 최근 세계 해운 동맹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국내 해운사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신규 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동맹에서 빠지거나 경쟁력이 낮은 동맹에 들어갈 경우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