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하만이 공동으로 개발해 7일 공개한 디지털콕핏 2021. <하만> |
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자장비(전장)사업 경영진에 변화룰 주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2016년 전장업체 하만 인수에 필적하는 전략적 행보를 통해 급변하는 전기차산업에서 성장의 기회를 모색할지 주목된다.
1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최근 자회사 하만이 온라인으로 진행한 새 차량용 디지털 플랫폼 '디지털콕핏' 공개행사에서 하만 전장사업부문장을 새로 맡게 된 크리스천 소보트카 부사장은 하만의 새로운 사업비전을 내놨다.
소보트카 부사장은 “자동차는 운전뿐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우리는 자동차를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의미 있는 공간으로서 기쁨을 주는 ‘제3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소보트카 부사장은 글로벌 1위 부품회사인 로버트보쉬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전장사업 전문가다. 삼성전자는 1월1일자로 소보트카 부사장을 하만 전장부문장에 선임했다.
외부인재 영입은 신규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최근 자율주행전기차 출시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애플 역시 2018년 테슬라에서 일하던 덕 필드 부사장을 영입하면서 좌초 직전까지 몰린 전기차 프로젝트를 되살린 것으로 파악된다.
소보트카 부사장 영입으로 하만의 전장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는 얼마 전 전장사업팀장에 이승욱 사업지원TF 부사장을 선임하는 등 전장사업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 수장을 교체한 것은 조직이 출범한 2015년 이후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서 경영진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최근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 출시설이 불거지는 등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전기차업계 판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자칫하다 전장사업 성장의 기회를 다른 기업에게 모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감지된다.
LG전자는 2020년 말 캐나다 자동차부품회사 마그나와 합작회사 설립을 발표했다. 1월 초에는 현대차와 애플이 자율주행 전기차 생산에서 협력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두 회사 주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특히 글로벌 IT·전자기업의 전기차 생태계 참여 흐름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애플, 알파벳, 아마존, 바이두, 알리바바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모빌리티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도 “자동차산업 경쟁력이 자율주행, 차량공유기술, 전동화 등 IT기술 경쟁력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의 전장사업을 향한 관심도 크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 이후 전장 분야에서 한동안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경쟁사처럼 전장사업 강화를 위한 전략적 행보가 나올 때가 됐다는 기대도 고개를 든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11일 삼성전자 주가의 저평가를 해소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이익 기여도가 제한적 전장사업에서 LG전자나 현대차처럼 투자자들의 주목이 쏠릴 만한 사건(이벤트)가 발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16년 당시 한국 기업거래 사상 최고 금액인 9조 원을 들여 하만을 인수해 전장사업에 뛰어들었다. 2018년 4대 미래성장사업 중 하나로 전장부품을 꼽는 등 그룹 차원에서 강한 육성 의지를 나타냈다.
하지만 하만 인수는 아직까지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수하기 이전에 하만 영업이익률은 10%에 가까웠으나 인수 이후 2017년 0.8%, 2018년 1.8%, 2019년 3.2% 등으로 낮아졌다.
하만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2020년에는 상반기에만 28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 연간 흑자 달성이 불투명하다. 매년 늘어나던 매출도 역성장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에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삼성전자가 전장사업팀장을 새로 선임한 것을 두고 전장분야 신규 인수합병의 전조라는 시선도 나온다. 이승욱 부사장은 현재 하만 이사로 있는 안중현 삼성전자 부사장과 함께 과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전략팀에서 하만 인수를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100조 원에 이르는 순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합병 여력이 충분하다. 언제든 필요하면 전장 분야 역량 강화를 위한 인수합병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을 진행할 수 있는 분야로는 차량용 반도체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4대 미래성장사업을 선정할 때 반도체를 중심으로 전장부품을 육성하겠다고 예고한데다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비전2030 목표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KPMG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20년 450억 달러에서 2040년 2천억 달러로 네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가 성장기회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진다.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전환속도가 빨라지고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현재 시장은 심각한 공급부족 상황에 놓여있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으로 도요타, 폴크스바겐, 포드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기업 인수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된다. 2020년 10월 이재용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 차량용 반도체 분야 1위 기업인 NXP반도체 인수설이 다시 조명받기도 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