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14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이 전 국회의장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출신으로 국회의원 8번과 국회의장 2차례, 여러 정당의 대표를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 이만섭 전 국회의장. |
이 전 의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최고회의에 출입하다 당시 박정희 의장의 눈에 거슬리는 기사를 써 육군형무소에 수감됐다.
이 전 의장은 당시의 인연을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한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 전 의장은 1963년 제6대 총선에서 31살의 나이로 공화당 전국구로 국회의원이 된 뒤 7, 10, 11, 12, 14, 15, 16대 의원을 지내며 8선을 기록했다. 이 전 국회의장은 14대 국회와 16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이 전 의장은 2009년 ‘516과 10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내놓고 서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나의 정치적 스승이었다”고 밝혔다.
이 전 의장은 남다른 강골기질 때문에 정치적 굴곡을 겪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19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에 앞장섰다. 고인은 공화당 의원총회에서 이후락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해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8년 동안 정치활동 공백기를 맞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13대 총선에서 낙마했으나 14대 총선에서 민자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돼 국회로 복귀했다.
이 전 의장은 1993년 4월 박준규 국회의장이 재산공개 파동으로 낙마하자 그 뒤를 이어 1년 2개월 동안 국회의장을 맡았다.
이 전 의장은 1993년 12월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사회를 거부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됐다.
이 전 의장은 1997년 신한국당 대표서리로서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를 맡았다.
이 전 의장은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후보가 대선후보로 뽑힌 것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의원을 따라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이인제 의원이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하자 이 전 의장은 거취를 고민하다 1998년 9월 국민신당 의원 6명을 데리고 당시 여당인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이 전 의장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고 두번째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 전 의장은 2004년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맡아 정계 원로로서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은 유족으로 부인 한윤복씨와 장남 이승욱씨, 딸 이승희, 이승인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례는 국회장으로 치뤄진다.[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