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마지막 남은 알짜계열사 금호산업마저 포기해야 하는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으로 구주 매각대금이 들어오지 않게 되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금호산업 지분에 담보권을 행사하며 박 전 회장과 금호산업의 연결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대금을 7천억 원 깎아주겠다는 채권단에게 다시 재실사를 요구하면서 아시아나항공 거래가 무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되면 금호고속이 차입 담보로 제공한 금호산업 지분 45%에 채권단이 담보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커질 수 밖에 없다.
채권단의 담보권 행사는 박 전 회장이 금호산업 지배력을 잃는 결과로 연결된다.
박 전 회장은 금호산업의 최대주주인 금호고속의 지분을 보유함으로써 금호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금호고속 대주주는 박 전 회장(27.8%), 박 전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대표이사 사장(18.8%), 박 전 회장의 친족(4.3%) 등이다.
금호고속은 채권단으로부터 1300억 원을 차입하며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지분 45%를 모두 담보로 제공했다.
금호고속이 스스로 돈을 갚을 능력이 있다면 박 전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에도 금호산업 지배력을 유지할 방안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금호고속은 보유자산 대부분을 이미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한 데다 코로나19로 경영악화가 겹쳐 2021년 1월이 만기인 차입금을 갚을 능력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금호고속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을 219억 원을 보유했다. 목포터미널, 대전터미널 등 주요 자산은 SC제일은행, 광주은행, 신한은행 등에 이미 담보로 잡혀 있다.
박 전 회장은 이런 점을 고려해 아시아나항공 구주 매각대금 3228억 원이 금호산업으로 들어오면 배당 등을 통해 이를 금호고속으로 옮겨 차입금을 갚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되면 이런 계획이 틀어지며 채권단의 담보권 행사가 현실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호산업은 금호그룹에서 수익창출이 가능한 마지막 회사로 여겨진다.
올해 상반기에 매출 7908억 원, 영업이익 348억 원을 거뒀는데 주택사업을 중심으로 풍부한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어 당분간 실적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시선도 많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금호산업이 풍부한 수주 잔고에 힘입어 최소 3년 이상 영업이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박 전 회장이 이런 금호산업을 잃는다면 실적 부진과 자산 담보 제공으로 껍데기만 남은 금호고속만 보유하게 될 수 있다.
박 전 회장으로서는 새로운 아시아나항공 원매자가 나타나거나 채권단이 차입금 만기를 연장해 담보권 행사를 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인다.
다만 코로나19로 악화한 항공업황과 이에 따라 나빠진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를 살피면 HDC현대산업개발 이후 새로 인수를 원하는 회사가 단기간에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증권업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돼 ‘플랜B’로 채권단 관리가 시작되면 채권단이 금호산업에게 아시아나항공 지분 차등감자를 압박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차등감자가 이뤄지면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지분가치가 낮아져 향후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이뤄지더라고 금호산업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줄어들거나 아예 없을 가능성도 있다.
박 전 회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상선, STX조선해양, 동부제철 등의 사례에서 실제로 기존 대주주의 차등감자가 이뤄지기도 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본잠식 상태인 아시아나항공에 국책은행이 증자, 출자전환 등으로 자금을 투입하면 기존 대주주의 책임을 묻기 위해 금호산업 지분에 차등감자를 요구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감병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