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신동빈 김승연, 화학사업 애착이 다른 이유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기업 오너들은 다른 것 같다. 그룹의 여러 사업을 놓고도 애착이 다르고 그 차이가 사업의 운명도 결정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화학사업을 완전히 정리했다.

반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삼성그룹과 '빅딜'을 통해 화학사업을 그룹의 주축으로 키워가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화학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갈랐을까?

◆ 이재용, 화학사업 정리하고 전자 강화

이재용 부회장이 화학사업을 정리한 데 대한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이재용 체제에서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이 좋은 판단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꾸준한 실적을 낼 수 있는 화학사업을 포기하고 아직 성과가 나오지 않은 신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선택이라는 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그룹이 영위해 온 화학사업의 가치가 결코 낮지 않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한다. 삼성그룹이 화학사업에 한계를 느껴 포기한다기보다 자체적으로 정리한다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화학산업은 산업의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대규모 장치산업으로 진입장벽이 높다. 특히 화학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화학사업은 대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일단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만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보장된다. 화학사업이 그룹의 자금창출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성격과 무관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을 심각하게 잘못하지 않는 이상 화학회사가 본업으로 망하는 일은 거의 없다”며 “삼성그룹이 특별히 실적이 부진하지 않은 화학사업을 매각한 것은 그룹 전체 사업구도에서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은 화학사업을 정리하고 전자와 금융 등을 중심으로 주력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매각한 자금을 재무구조 개선과 신사업 투자에 쓰겠다고 밝혔고 이번 삼성SDI 케미칼사업부와 삼성정밀화학 매각자금도 전기차 배터리사업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재용 신동빈 김승연, 화학사업 애착이 다른 이유  
▲ 신동빈 회장(왼쪽)과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이 2013년 12월 롯데케미칼 합병 및 CI선포식을 열고 있다.

◆ 후계자에게 낯선 사업분야, 화학사업


삼성그룹에서 화학사업이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그룹이 창업2세에서 3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전자와 금융은 이재용 부회장이, 호텔과 유통은 이부진 사장이, 패션과 광고는 이서현 사장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화학사업은 오너 3세 경영의 사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3자녀 가운데 화학계열사 경영에 참여한 이는 없었다. 특히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로 입사해 줄곧 전자사업에만 몸담아 왔다.

이부진 사장이 삼성석유화학 지분 33.2%를 보유하고 있어 화학사업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이부진 사장이 우연하게 이 지분을 보유하게 된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애정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삼성종합화학이 지난해 4월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하면서 이부진 사장 지분은 4.9%로 줄었고 삼성종합화학은 지난해 11월 한화그룹에 매각이 결정됐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중공업 계열사를 놓고 매각 가능성이 나오는 것도 화학사업 정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중공업이 오너 3세들 모두에게 낯선 사업 분야다 보니 챙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 신동빈의 친정, 롯데케미칼

삼성그룹과 달리 화학사업을 키우고 있는 대기업 오너들은 화학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화학사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케미칼 임원으로 한국 재계에 데뷔했다. 신 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처음 발을 들였는데 한국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은 1990년 롯데케미칼(구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부터다.

신 회장은 1991년 호남석유화학 상장작업을 이끌었고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이동했으나 2004년 다시 호남석유화학 공동 대표이사로 돌아와 케이피케미칼 인수와 롯데대산유화 흡수합병 등으로 호남석유화학을 키워나갔다.

롯데그룹에서 신 회장의 가신그룹 역할을 하고 있는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임병연 롯데그룹 미래전략실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등이 모두 호남석유화학에서 동고동락했던 인물들이라는 점만 봐도 신 회장이 롯데케미칼에 얼마나 애착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신 회장은 이번에 롯데 경영권 분쟁에서도 롯데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을 때마다 어떤 계열사보다 먼저 롯데케미칼을 방문했다. 신 회장은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프로젝트, 북미 에탄크래커 공장 건립 등 롯데케미칼 현안들을 직접 챙기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재용 신동빈 김승연, 화학사업 애착이 다른 이유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구본무 LG그룹 회장.

◆ 구본무 김승연, 화학계열사에서 경영능력 쌓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화학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을 인수한 것도 이런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김 회장은 회장에 취임한 이듬해인 1982년 한양화학과 한화다우케미칼을 인수해 화학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2차 오일쇼크로 석유화학경기가 좋지 않아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인수를 밀어붙여 화학사업을 키워나갔다.

김 회장의 이런 의지 덕분에 한화그룹은 10대그룹에 진입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번에도 한화종합화학을 인수하며 한화그룹을 10대그룹 반열에 다시 올려 놓았다.

김 회장은 2000년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에 올랐고 2009년에도 다시 대표이사를 맡아 책임경영의 의지를 보였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도 LG화학은 각별하다.

LG화학이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화학업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화학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화학사업에 대한 구 회장의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다.

구 회장은 1975년 LG화학 심사과장으로 시작해 1979년 LG화학 유지총괄본부장에 오르는 등 LG화학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구 회장은 1998년 LG화학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구 회장 역시 LG화학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배터리사업을 직접 일궈내는 등 LG화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구 회장은 최근 LG화학 배터리사업의 결실로 꼽히는 중국 난징공장 준공식에 참석하는 등 LG화학 행사에 자주 참여해 각별한 애정을 보여 주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