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삼성전자에 대한 반독점 위반 조사를 ‘합의종결’로 마무리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제시한 타협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유럽연합에 고개를 숙인 격이지만 덕분에 20조에 이르는 벌금을 피하게 됐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표준필수특허(SEP) 금지 명령에 대한 삼성전자의 타협안을 받아들였다고 29일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삼성전자가 표준특허를 남용했다는 것과 관련한 반독점 위반 조사를 ‘합의종결’로 마무리했다. 삼성전자가 시정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에 별도의 벌금 부과없이 조사를 종결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유럽서 20조 벌금 피해  
▲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회장

호아킨 알무니아 집행위원회 부회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적재산권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건전한 경쟁과 소비자 이익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은 건전한 경쟁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금지명령에 기대지 않고 표준특허 분쟁을 해결한 것”이라며 “삼성의 노력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알무니아 부회장은 “이번 위원회 결정은 프랜드 원칙에 관한 분쟁을 해결하는데 유럽연합이 무엇을 적절한 방법이라고 여기는지 명확하게 전달한 것”이라며 “다른 사업자들도 이와 비슷한 분쟁해결 방법을 고려하도록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랜드(FRAND) 원칙은 표준특허 보유자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으로 협의해야 한다는 의무를 말한다.


삼성전자는 유럽연합의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번 합의로 삼성전자의 부정행위가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앞으로 불확실성을 줄이고 높은 투명도를 업계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삼성전자의 표준특허 남용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2011년 11월 처음 알려졌다. 애플은 캘리포니아법원에 낸 소장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삼성전자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2012년 1월 삼성전자가 반독점 관련 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해 공식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1998년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에 필수 표준 특허권을 남용하지 않고 프랜드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애플과 특허소송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의 3세대 이동통신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침해를 주장한 기술 대부분이 필수 표준 특허권에 해당돼 문제가 됐다.


삼성전자는 “표준 특허권을 행사하는 데 유럽연합의 반독점 원칙을 지켰다”며 무혐의를 자신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집행위원회의 조사가 수년은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애플과 소송에 미칠 영향도 적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유럽연합의 압박이 심해지자 표준특허와 관련해 유럽에서 애플을 상대로 낸 판매금지 신청을 모두 철회했다. 무혐의를 자신했지만 상황이 불리해지자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조치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소비자들이 다양한 제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해 판매금지 요청을 취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은 삼성전자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갔다. 알무니아 부회장이 2012년 12월 “유럽연합은 곧 삼성전자의 반독점 위반에 이의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삼성전자에 불리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의성명(stament of objections) 발표는 삼성전자가 반독점 원칙을 위반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으며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뜻이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9월 “반독점 문제를 해결하려면 삼성전자가 더 양보해야 한다”며 “삼성전자의 노력이 부족하면 최대 183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지난해 수개월 동안 협상을 벌였지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 유럽서 20조 벌금 피해  
▲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유럽연합이 반독점 조사를 ‘금지종결’로 처리하면 반독점법을 위반한 기업은 연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의 2012년 매출액은 200조 원이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유럽연합에 백기를 들었다. 삼성전자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타협안을 제시했다. 알무니아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드디어 유럽연합에 만족할만한 타협안을 내놨다”며 “곧 삼성전자가 제시한 타협안을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스마트폰과 타블렛 PC 기술과 관련해 삼성전자와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 동의하는 회사에 대해서 5년간 표준특허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삼성전자는 표준특허를 사용하려는 회사와 최대 12개월 협상을 벌여야 한다. 다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제3의 중재자나 법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