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SK와 SKC&C 합병이 뜻하지 않은 일격을 맞았다.

SK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SK와 SKC&C 합병에 반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의 합병이 SK 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했다.

국민연금이 반대한다고 해서 두 회사의 합병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 회장은 도덕적 상처를 입게 됐다. 최 회장이 SK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구축하기 위해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이런 상처는 최 회장이나 SK그룹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SK그룹 관계자들은 황교안 국무총리 등장 이후 황 총리가 법무부 장관 시절 기업인 가석방에 대해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들어 최 회장이 조기에 가석방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이번 합병 반대로 SK와 SKC&C 합병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경우 최 회장의 가석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 국민연금 “SK-SKC&C 합병은 SK 주주가치 훼손”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24일 SK와 SKC&C 합병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의결위의 결정에 따라 국민연금은 26일 예정된 SK 임시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게 된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SK 지분 7.19%를 보유하고 있다.

의결위는 “합병의 취지와 목적에 공감”한다면서도 “합병비율과 자사주 소각시점을 고려할 때 합병이 SK의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곧 최태원 회장의 보유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해 SK의 주주가치를 의도적으로 저평가했다는 뜻이다.

SK와 SKC&C는 1:0.74의 비율로 합병을 결정했다. SK그룹은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이런 합병비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합병비율은 실제 기업가치를 공정하게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SKC&C 지분을 대거 보유한 최태원 회장에게 유리하도록 SKC&C 주가는 오르고 SK 주가는 떨어진 시점에서 합병을 결정했다는 지적도 많다.

또 SK가 보유한 자사주에 대해 신주를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해 사실상 자사주 소각 효과가 나타난 점도 논란거리였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올라가는데 이를 반영하지 않고 합병비율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SK와 SKC&C 합병은 SK그룹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판단한다.

최 회장은 SK그룹 오너지만 지주회사인 SK 지분은 0.02%을 보유하는 데 그치고 있다. 최 회장은 그동안 지분 32.9%를 보유한 SKC&C를 통해 SK그룹을 지배했다. SKC&C는 SK 지분 31.8%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는 최 회장에게 항상 골칫거리였다. SK그룹을 지배하기에 불안정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해 SK그룹의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왔다.

특히 SKC&C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SK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의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SKC&C의 몸집을 불리는 데 SK그룹이 총동원됐다.

최 회장은 시스템통합관리(SI) 회사인 SKC&C에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등 그룹 계열사의 전산업무를 몰아줬다.

SKC&C는 2009년 상장 당시 시가총액이 1조8천억 원에 불과했으나 5년 만에 시가총액 10조 원을 돌파했다. 물론 상장 뒤 중고차매매와 중고휴대폰, 메모리반도체모듈 등 사업다각화에 힘쓴 것도 영향을 미쳤다.

SK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합병 뒤 최태원 회장 지분은 23.4%로 오히려 감소한다”며 “합병은 지배력 강화가 아니라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

◆ 합병 성공해도 최태원에게 남을 꼬리표

국민연금이 반대해도 SKC&C와 SK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SK 지분 31.87%를 보유하고 있고 의결권 자문기관들도 합병에 찬성의사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영자산운용과 메트라이프생명보험 등 다른 SK 주주들도 찬성의견을 보이고 있다.

SK 관계자는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산정된 것으로 문제가 없다”며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국내 자문기관인 기업지배구조연구원도 찬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반대결정은 이례적”이라고 불만을 나타내며 “합병은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합병이 통과한다 해도 최 회장은 ‘도덕적’ 상처를 안게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하면서 ‘주주가치 훼손’이라고 밝힌 것은 곧 최 회장의 SK그룹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주주들을 저버렸다고 평가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처는 최 회장이 옥중에 있는 상황이라 더욱 부담이 된다.

최 회장은 2013년 횡령 혐의로 4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형기의 절반 정도를 복역했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부재상황에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방산비리와 관련해 합동수사단의 소환조사를 받았고 SK건설은 비자금조성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SK그룹 계열사들이 줄지어 사정당국의 수사망에 올라있다.

또 SK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구조 개편에서도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정철길 사장은 최근 SK루브리컨츠 매각을 추진하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매각을 포기해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SK그룹은 이런 상황이 최 회장의 장기부재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해 비롯된다고 본다. 최 회장이 옥중에서 그룹의 주요 현안에 대해 의사결정하는 등 옥중경영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SK그룹은 최 회장의 조기 가석방을 바라고 있다. SK그룹 관계자들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친기업’ 성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르면 광복절에 최 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최 회장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된다면 조기 가석방 기대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반대가 SK와 SKC&C 합병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도 국민연금의 반대에 SK그룹이 당혹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