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시장의 예상을 앞지른 기준금리 인하로 정책효과의 극대화를 노릴 수도 있다.

9일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총재가 이르면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주열, 세계 환율전쟁 속에 한국은행도 금리인하 속도전 선택할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 총재는 이미 7월에 한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수준인 1.25%에 근접한 1.50%까지 내려간 만큼 이 총재가 추가적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이 총재가 기준금리를 놓고 인하폭이 아닌 속도로 해법을 찾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허정인 NH선물 연구원은 “무역전쟁의 확전으로 생산을 담당하는 국가의 성장동력이 상실되는 등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폭을 키우기에는 부담스러운 여건”이라며 “‘인하폭’ 보다는 ‘속도’를 통해 공격적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연내 추가적 기준금리 인하를 이미 예상하고 있는 만큼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를 결단한다 해도 이를 확인해주는 효과밖에는 거두기 어렵다.

인하폭과 횟수를 마냥 늘릴 수 없다면 이 총재가 시기를 앞당김으로써 통화정책의 효과를 극대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하는 이 총재가 앞으로 두 차례 정도 밖에 쓸 수 없는 정책수단이기도 하다.

이 총재는 7월에도 시장의 예상을 앞선 깜짝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이 총재에게 연내 추가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도록 압박하는 주요 원인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촉발된 환율전쟁과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경쟁적 기준금리 인하다.

미국 재무부가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며 환율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은 8일 인민은행 위안화 환율고시를 통해 공식적으로 ‘포치(破七)’를 용인하며 맞불을 놨다. 포치란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서는 것을 뜻한다.

중국 인민은행은 9일 고시환율을 달러당 7.0136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 고시환율인 달러당 7.0039위안 보다 위안화가치 0.14% 절하한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이미 달러당 7위안을 넘어섰던 시장환율에도 불구하고 고시환율을 통해 포치를 공식화하고 연이어 위안화를 절하한 것은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환율전쟁 격화로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데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로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고 자국 통화의 가치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일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50%에서 1.00%로 인하했다. 기준금리 인하 자체는 유력했으나 인하폭이 시장의 예상보다 컸다. 인도 중앙은행도 같은 날 기준금리를 0.35% 낮춘 5.4%로 결정했다. 인도의 기준금리는 9년 내 최저치다.

태국 중앙은행도 동결 예상과 달리 2015년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50%로 인하했다. 필리핀 중앙은행도 8일 기준금리를 4.25%로 0.25%포인트 낮췄다.

세계적으로 각 나라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하자 블룸버그는 ‘비둘기 파도(Dovish Wave)’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총재가 이런 경쟁적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부양에 도움이 되지만 자국 통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다.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면서도 원화 가치가 떨어져 외국인 자금이 국외로 유출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디만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원화가치 하락보다는 경기부양 효과 쪽에 더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가 원화 약세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상황에서 제한적일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하 기조는 세계적으로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대외적 경제여건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바라봤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는 30일 열린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