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현의 패션사업, 성과와 한계  
▲ 이서현 삼성에버랜드·제일기획 사장
 
이서현 사장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에 위치한 파슨스디자인대학교를 다녔다. 파슨스디자인학교는 세계 3대 디자인 학교로 꼽히며 마크 제이콥스, 안나수이 등 유명 디자이너를 배출한 곳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서울대 인문대-하버드 경영대학원, 이부진 사장이 대원외고-연세대 아동복지학과를 나온 것과 비교하면 이서현 사장은 일찍부터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던 셈이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어머니 홍라희 리움 관장을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장은 파슨스디자인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 뒤 승진을 거듭해 2010년 부사장에 올랐다. 같은해 광고회사 제일기획의 부사장 직함도 달았다. 3년 뒤 두 회사에서 모두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사장은 제일모직에 입사해 남성복 중심이었던 회사의 사업구조를 여성복 라인으로 개편하는 데 힘써 왔다. 브랜드 '구호'가 대표적인 예다. 이 사장은 파슨스디자인학교 동문인 정구호씨가 만든 여성복 브랜드 구호를 2003년 인수했다. 당시 제일모직 내부에서 반대가 심했다. 대기업이 여성복에서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 사장이 강하게 밀어 붙여 성사됐다. 그 뒤 구호 브랜드는 매출이 10년 만에 13배나 뛰었다.
 
이 사장은 그동안 제일모직에서 갤럭시, 로가디스, 엠비오, 구호, 르베이지, 띠어리 등 비교적 고가 브랜드를 주력으로 내세웠다. 발망과 토리버치 같은 외국 브랜드도 그의 손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이 사장은 또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만드는 데도 힘썼다. '헥사 바이 구호'를 만들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뉴욕 컬렉션에 진출했다. 평소 공식 행사장에서 이 사장은 "잠재력이 큰 한국 디자이너가 많은데도 아직까지 글로벌 인지도를 지닌 브랜드가 없다는 게 속상하다"고 자주 말했다.
 
이 사장은 헥사 바이 구호, 데렐쿠니, 준지를 바탕으로 해외사업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 사장의 명품 중심의 사업은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데렐쿠니는 매출이 나빠 지난해 정리했다. 10년간 제일모직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정구호 전무도 최근 회사를 떠났다. 

조만간 헥사 바이 구호도 정리할 예정이라고 삼성에버랜드 패션사업 부문 관계자는 전했다. 한 디자이너는 "사업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효율성을 따져 브랜드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이서현 사장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 사장은 그동안 추구했던 고급화 전략과 전혀 다른 길에서 패션사업의 활로를 찾고 있다. 그는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인 '에잇세컨즈'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브랜드는 출시 2년 만에 13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6월 대학생 1천여 명을 대상으로 가장 선호하는 SPA 브랜드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유니클로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에버랜드로 이관되면서 용인 에버랜드에 에잇세컨즈 매장을 열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이 사장은 이 브랜드 출범 때부터 에잇세컨즈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이서현의 패션사업, 성과와 한계  
▲ 이서현 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이 지난 1월2일 삼성그룹 신년하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례회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 사장 직함도 달고 있다. 2010년 이 사장이 처음 제일기획에 발령받았을 때 회사는 "해외시장 진출 및 조직 관련 업무 등을 담당할 기획담당 임원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입사 4년 만인 지난해 12월 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삼성그룹은 이 사장의 승진과 관련해  "이 사장은 그동안 제일모직의 패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아웃도어 등 신사업 동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며  "삼성에버랜드로 통합된 패션사업의 제 2의 도약을 이끌 인물로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제일모직에서 패션부문을 떼어내 삼성에버랜드로 옮긴 데 대한 반대급부적 보상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 사장은 제일기획을 맡은 뒤 글로벌 전략을 추진했다. 그 성과로 지난해 칸광고제에서 총 9개 부문 20개 본상을 수상하며 국내 광고회사로서 최다수상의 기록을 세웠다.
 
이 사장은 사장 승진 이후 제일기획의 경영전략부문장도 함께 맡았다. 제일기획은 "2010년 이서현 부사장이 기획담당 전무로 부임한 이후 4년 만에 매출이 2배 늘어났고, 세계 수준의 글로벌 마케팅 솔루션 회사로 성장했다"며 "경영능력은 충분히 검증됐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기획이 내부거래로 매출의 상당부분은 만드는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제출된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제일기획의 거래 중 65%가 내부거래다. 삼성 계열사들이 여전히 제일기획에 광고를 몰아주고 있다. 

중소광고기업들은 "삼성의 물량을 따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지난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제일기획이 아닌 외부 업체에 광고를 맡길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그룹 전체의 광고물량을 감안하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워 보인다.
 
이서현 사장의 남편은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이다. 김 사장은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이 부회장이 직접 중매를 섰다고 한다. 김 사장은 미국 웨슬리언대 국제정치학-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사(MBA)를 마친 후 컨설팅회사와 이베이 등에서 일했다. 

김 사장은 2000년 결혼하고 2002년 제일기획 상무보로 삼성에 입사했다. 그는 장인 이건희 회장의 스포츠 외교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한빙상연맹 회장을 맡고 있으며, 소치 동계올림픽 단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