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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 |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명예회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업으로 도전을 통해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는 말을 생전에 입버릇처럼 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0년대 중반 사장들에게 숙제를 내준 일화를 남겼다. ‘5~10년 뒤 뭘 먹고 살 것인지’를 보고서로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이 회장은 “원하는 답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정답을 내놓았다. 이 회장이 내놓은 해답은 이랬다.
“1년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5~10년 뒤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해답은 이런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구하고 키우는 데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에 참석한 뒤 귀국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중국 출장길에서 IT(정보통신)·전자는 물론이고 금융·헬스케어 등 삼성의 미래 신성장동력사업과 관련해 현장을 점검하고 현지 최고위 관계자들과 만났다.
이 부회장은 27일 보아오포럼 이사교류 만찬에서 “한국경제의 새 성장동력으로 의료·관광·문화산업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삼성은 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중국일정을 곁에서 지킨 이는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이다.
손 사장의 역할은 단지 이 부회장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포럼기간 중 ‘스마트의료와 웨어러블’ 세션에 나와 직접 신기술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이병철 명예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정신을 이어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경영에 나서고 있는 데 손 사장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손 사장은 이 명예회장이나 이건희 회장이 강조했던 시장선도형 인재로 평가받는다. 또 삼성전자가 수년 전부터 내세워 온 개방과 혁신의 상징적 인물이기도 하다.
손 사장의 영어이름은 ‘손 영’이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가장 대표적 한국인으로 꼽힌다.
손 사장은 2012년 8월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미래연구개발(R&D)를 담당하는 전략혁신센터를 열면서 수장으로 영입됐다.
손 사장 영입 당시 삼성그룹 사장들이 미국 현지로 출장을 가 직접 접촉했을 만큼 공을 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건희 회장의 글로벌 인재영입 의지에 따른 것이다.
손 사장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MIT에서 경영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HP엔지니어로 출발해 인텔코리아 초대사장, 퀀텀 아시아태평양 지사장, 오크테크놀러지 CEO, 하이닉스 반도체 사외이사 등을 지냈다.
손 사장은 인텔코리아 사장으로 있던 1984년 삼성과 인텔의 전략적 제휴를 주도했으며 인텔이 한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을 평가받는다. 그는 2003년 10월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사장에 취임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손 사장은 이런 화려한 경력 덕분에 그 뒤에도 글로벌 IT기업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다가 삼성전자에 둥지를 틀었다.
손 사장이 현재 이끌고 있는 삼성전략혁신센터는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기업들과 교류와 M&A 등 개방형 혁신을 주도하는 곳이다. 손 사장은 미국 IT업계에서 오래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인맥이 두텁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켜 ‘삼성이 변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데는 손 사장의 공로가 크다.
손 사장은 ‘M&A주의자’다. 삼성전자의 혁신을 위한 해법으로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과 인수합병(M&A)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해 기존관념을 깨는 혁신적 아이디어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실패하더라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을 적극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것은 스타트업과 삼성에게 모두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손 사장은 지난 2월 삼성 수요사장단에 청중이 아닌 연사로 등장해 개방형 사업모델의 성공사례와 전략을 설파했다.
그는 “삼성이 외부의 기술 아이디어에 보다 개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이노베이터(혁신가)가 되려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리더십과 창의성, 실험정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재용 부회장 체제 삼성전자에서 손 사장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 사장은 삼성전자의 M&A와 벤처투자를 지휘하며 실리콘밸리에서 이미 ‘큰손’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손 사장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신임도 두텁다. 이 부회장은 미국에 출장가면 실리콘밸리 전략혁신센터를 자주 들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