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제철 인수가 수면 위로 불쑥 올라왔다. 그러나 중개자 겸 인수자 홍기택 KDB금융그룹 회장과 인수자 후보 권오준 포스코 회장, 매각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속 마음은 제각각이다. 해법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홍기택 권오준 김준기의 두통거리, 동부제철  
▲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겸 KDB산업은행장
2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산업은행과 비밀유지약정서를 체결하고 동부제철 인수 검토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향후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의 사업 전망과 경쟁력, 시너지 효과 창출 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에 앞서 지난 27일 산은으로부터 동부제철 인천공항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를 제안받았다.

제안서에 동부제철의 경우 포스코가 지분의 20~30%를,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산업은행 사모펀드가 나머지 70~80%를 인수하고 동부발전당진의 경우 포스코가 우선매수협상권을 갖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철강업계 관계자들의 예상대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의 패키지 인수가 진행되는 것인데 산은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조건이 새롭게 붙었다.

포스코 관계자를 통해 알려진 제안서 내용으로 미뤄보아 홍기택 KDB금융그룹 회장은 패키지 매각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부그룹의 주채권은행으로 매각을 주도하는 산은은 동부제철 인천공장에 동부발전당진을 묶어 포스코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산은 관계자는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매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동부발전당진과 묶어서 인수를 제안하면 매각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산은은 자신이 재무적 투자자로 나서면 포스코의 인수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산은이 투자한 만큼 포스코의 재무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홍 회장이 재무 부담을 안으면서도 동부제철 패키지 매각을 추진하는 데는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동부그룹 매물에 대해 국내 산업 보호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동부그룹 매물이 해외업체에 넘어갈 경우 국내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산은의 정책금융 맏형 역할을 강조해온 홍 회장은 국내기업 중 인수할 여력이 있는 포스코로 하여금 패키지로 인수하게 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의 공식 제안을 받은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난감한 입장이 됐다.

  홍기택 권오준 김준기의 두통거리, 동부제철  
▲ 권오준 포스코 회장 <뉴시스>
포스코는 동부제철 매각이 결정된 지난해 11월부터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포스코는 그 동안 인수 제안을 받은 적도 없고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혀왔다. 지난 26일 권 회장이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동부제철 인수는 좀 더 스터디를 해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지만 그마저도 신중한 입장 표명이었다.

권 회장은 동부제철 인수가 부담스럽다. 권 회장은 취임하기 전부터 내실강화를 내세우며 인수합병을 통한 외형 확장을 지양하고 재무 건전성 강화에 중점을 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애초 동부제철 패키지 매물가는 1조6천억 원 가량으로 예상됐지만 산은이 공동 인수자로 나서면서 포스코가 투자해야 할 금액은 최대 4500억 원 가량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포스코는 2013년 말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차입금이 19조 원에 육박해 자금 조달 여력이 없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시설이 노후화해 설비보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포스코에너지가 이미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생산제품인 칼라강판을 생산하고 있어 포스코에게 매력적인 매물이 아니다. 동부발전당진은 포스코의 에너지 사업부문 확장에 도움이 되지만 동부발전 인천공장까지 떠맡으면서까지 인수할 정도로 매력적인 매물인가에 대해서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동안 국내 철강의 맏형으로서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포스코가 동부제철 인수에 나서야 한다는 명분론이 철강업계에서 제기돼 왔다. 그러나 포스코는 지금 맏형 체면을 고민할 때가 아니다. 포스코 관계자는 동부제철 인수 제안에 대해 “칼라강판 시장은 이미 공급과잉으로 힘든 상황”이라며 “동부제철 인천공장 인수는 포스코에 이익이 될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산은이 포스코에 동부제철 패키지 인수를 공식 제안했다고 알려지면서 포스코 주가는 전일 대비 2.97%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반면 동부제철 주가는 전일 대비 9.78% 급등했다. 


주가가 올랐다고 해서 동부제철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태다. 매물을 내놓은 동부제철은 패키지 매각 방식이 불만스럽다.

  홍기택 권오준 김준기의 두통거리, 동부제철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동부제철 고위관계자는 “패키지 매각은 사실 여러가지 방안 중 하나”라면서 “산업은행이 너무 속도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제철 입장에서 패키지로 매각할 때보다 매각기간이 길어지더라도 동부제철 인천공항과 동부발전당진을 따로 매각하는 것이 좋다. 경쟁입찰을 통해 두 회사 각각의 매각가격을 높일 수 있고 그렇게 하는 편이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6조3천억 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2조9천억 원 수준으로 줄이는 고강도의 자구책을 내놓으면서 구조조정의 전권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위임했다. 자구책에 주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을 매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당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구조조정에 참여해 사재 1천억 원을 출연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이 약속한 사재출연의 구체적 일정이나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동부제철은 28일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었다. 이날 주총에서 인천공장 분할매각과 300억 원 유상증자, 이사 보수한도 30억 원 동결 안건 등이 원안대로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