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국고채 경쟁입찰을 알리는 재정경제부 보도자료. 8월27일 보도자료가 나온 뒤 20년물 일정만 바뀌어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다. <재정경제부>
9월 6천억 원 규모의 국고채 20년물 입찰일이 8월27일 발표 당시 9월22일로 잡혔다가 5일 뒤인 9월1일 늦은 오후 갑작스럽게 9월9일로 바뀌며 2주가량 당겨진 것이다.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거래되는 국고채 시장인 만큼 큰 뉴스가 되지는 않았지만 각 증권사 딜러 등 국고채 20년물을 포트폴리오에 담은 시장 참여자들은 동요했다.
물량이 애초 계획보다 일찍 풀려 채권가격 하락(채권금리 상승)이 예고되면서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해서다.
재정경제부는 9월10일 ‘26-10호’로 지표물 변경을 앞두고 스퀴즈(물량 부족)를 우려해 입찰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고채 지표물은 시장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물량으로 각 연물별로 채권시장에서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표 채권을 말한다.
9월10일 지표물 변경을 앞두고 8월 선매출과 비경쟁인수를 통해 2420억 원 규모의 26-10호가 발행됐는데 재정경제부는 이 물량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스퀴즈가 발생하면 일시적으로 채권금리가 하락(채권가격 상승)하면서 시장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시장 일각에서는 2천억 정도의 물량이면 스퀴즈가 잘 나지 않는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일정 조정은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글로벌 주요국 국고채 장기물 금리가 ‘발작’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튀어 오른 1일 이뤄졌다.
지난 주 한국도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여는 등 국내 채권시장 동향을 면밀히 살피며 경계 태세를 보였는데 국고채 20년물의 경우 오히려 입찰 일정을 앞당겨 조정한 것이다.
입찰 일정이 당겨지면 계획보다 시장에 유통되는 물량이 많아지고 이는 채권가격 하락, 채권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대형 전문딜러(PD) 역할을 겸하고 있는 대형 증권사들의 입김이 재정경제부 입찰 일정 변경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 재정경제부는 9월 경쟁입찰을 통해 16조 원 규모의 국고채를 발행한다. <재정경제부>
한 중소형 증권사 채권시장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소수 대형 전문딜러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됐다는 이야기들이 돌고 있다”며 “사전 충분한 공지 없이 이례적으로 일정이 바뀌면서 시장 신뢰도 하락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국고채 20년물 입찰 일정이 갑작스럽게 왜 바뀌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재정경제부의 스퀴즈 우려는 시장의 설득력을 충분히 얻지 못한 가능성의 영역이고 대형 전문딜러 입김설은 확실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시장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시장과 충분한 소통 없이 국고채 입찰 일정이 갑작스레 바뀌면서 공정한 시장 형성의 심판 역할을 맡아야 할 당국을 향한 의구심 어린 시선이 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돈보다 더 강력한 확대경을 제공하는 것은 없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으로 작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모건 하우절은 자신의 대표작 ‘돈의 심리학’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돈은 사람 행동의 동기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인데 동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돈의 힘은 수많은 의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고위공직자가 재산공개와 백지신탁을 하고 증권사 직원의 주식 투자에 제한을 두는 것은 그 사람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수많은 의심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돈의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10년 넘게 준비한 끝에 2024년 채권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이 확정됐고 올해 들어서야 지수 편입에 따른 외국투자자의 국고채 매입이 시작됐다.
이례적 일은 한번으로 족하다. 정부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서 좋을 것이 없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