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기후대응 법적 의무' 공식화 수순, "한국도 화석연료 문제 관련 사법 체계 정비 필요성"

▲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세계 각국이 기후대응을 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이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사진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석.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세계 각국이 기후대응을 이행할 법적 의무가 있다는 권고적 의견을 내놓은 지 1년이 지났다.

유엔 총회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이 공식 결의안으로 채택되면서 국제 사회에 기후대응 법적 의무가 공식화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에 한국도 기후 대응에 영향을 미칠 화석연료 개발사업 등과 관련해 국제 사회의 이런 변화 기류를 국내 사법 체계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제사법재판소 기후대응 의무에 관한 권고적 의견으로부터 1주년

23일(현지시각) 국제적 비정부기구(NGO)인 국제환경법센터(CIEL)과 그린피스 등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나온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의 의무에 관한 권고적 의견' 1주년을 기념하는 논평을 내놨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23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세계 각국 정부는 심각한 환경 피해 및 기후변화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판단을 내놨다.

국제환경법센터는 해당 판단이 법관들의 만장일치로 나온 것인 만큼 의미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그 뒤 올해 5월20일 유엔총회는 여러 비공식 협의 및 협상을 거쳐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적 의견을 정식 결의안으로 채택했다.

당시 총회 투표 결과는 찬성 141표, 반대 8표, 기권 28표로 결의안은 유엔 회원국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태평양 섬나라 학생들' 캠페인의 비샬 프라사드 국장은 이날 한국 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이 국제사법재판소 권고적 의견을 기념해 개최한 웨비나(웹+세미나, 온라인 세미나나 강연)를 통해 "국가의 기후대응 의무에 관한 법적 책임이 실체를 갖추게 됐다"며 "권고적 의견이 나오기 전에는 화석연료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았으나 이제는 책임을 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태평양 섬나라 학생'들은 바누아투 기후환경단체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세계 각국의 기후대응에 관한 책임을 판단해 달라는 요구를 처음으로 한 곳이다.

◆ 세계 각국, 국제사법재판소 의견으로 실제 법적 배상 책임 지게 돼

국제사법재판소가 법적 의무와 관련한 권고적 의견을 내고 유엔 총회에서 이를 결의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은 기후 대응과 관련한 법적 배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국제사법재판소가 내놓은 권고적 의견 제427조를 보면 화석연료에 관한 문제가 직접적으로 언급됐는데 이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화석연료 생산, 소비, 탐사, 시추부터 이같은 행위 전반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이르기까지에 관해 특정 국가가 기후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 국가에 귀속되는 위법행위가 구성된다고 명시했다.

이같은 내용은 유엔 총회 결의안에도 반영됐다.

프라사드 국장은 "국제사법재판소는 특정 국가의 재무부, 경제부에서 내린 결정이 이제는 국제적으로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라며 "이에 유엔 총회 결의안 채택에 반대하던 국가들도 굉장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정 국가가 화석연료 생산 활동을 지속하며 기후변화를 악화시킨 것이 입증된다면 기후 피해를 입고 있는 취약국가가 해당 국가에 국제법적 책임을 무는 것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23일(현지시각)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태평양 도서국들은 올해 11월에 열리는 유엔 기후총회에 앞서 10월에 사전회의를 갖고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기후피해 복구를 목적으로 하는 지원을 요구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프라사드 국장은 "우리는 회의에서 일부 당사국들이 거부해온 화석연료에 관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문구를 다루기로 했다"며 "구체적으로 연도를 설정해 화석연료 산업을 지원하는 보조금을 퇴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 '기후대응 법적 의무' 공식화 수순, "한국도 화석연료 문제 관련 사법 체계 정비 필요성"

▲ 미국 뉴욕시에 위치한 유엔 본부 총회장 모습. <연합뉴스>

◆ "한국도 화석연료 개발 등에서 국제적 기조와 사법 체계 맞춰가야" 지적

한국도 변화하는 국제법 기조에 맞춰 한국 사법 체계도 변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국내 시민단체에서 나왔다.

차유현 기후솔루션 가스팀 연구원은 이날 국제사법재판소 권고적 의견 기념 웨비나에서 "현재 한국 법원에서는 기후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사건과 관련해 이를 포괄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은 향후 4억 톤이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것으로 전망되는 모잠비크 가스전 사업 금융지원 중단 가처분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해당 사업은 한국가스공사, 삼성중공업, 대우건설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업이다. 규모가 큰 사업인 만큼 한국 수출 신용기관인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이 약 18억 달러(약 2조6천억 원)에 달하는 금융지원을 하기로 되어 있다.

기후솔루션은 해당 사업이 진행되면 인근 지역 주민들로부터 한국 시민들까지 안정적인 기후환경에서 살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서울중앙지법은 법원은 해당 사업이 환경 측면으로 바람직하거나 기후정책에 부합하는지 포괄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이를 놓고 차 연구원은 "국가가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인권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할 구속력 있는 의무가 있다고 본 국제사법재판소 판단과는 거리가 있다"며 "국제사법재판소가 이같은 결정을 내놨다고 해서 국내 법원 결정도 자동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차 연구원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은 앞으로 기후소송이 발전해 나갈 법적 토대가 강화됐다고 생각한다"며 "국가는 이제 기후대응을 엄중히 이행해야 할 법적 의무로 받아들여야 하며 향후 국내 법원들은 사건을 판단할 때 적극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 의견을 인용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