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제조업도 위협, 한국 기업 투자 악영향 가능성

▲ 파란색 후드티를 입은 주민이 5월12일 미국 오하이오주 미들턴타운십에서 울타리 너머로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에서 전력 수요가 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가 대폭 늘어나면서 철강, 화학, 반도체 등 제조업 공장과 ‘전력 확보’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및 현대제철과 LG화학 등 한국 주요 기업은 미국에 대규모 생산 설비를 건설하고 있는데 전력 확보 경쟁이 이들의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미국 철강과 화학 등 기존 제조업, 전력 비용 상승으로 생산 기반 흔들려

5일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을 보면 철강을 비롯한 기존 제조업이 AI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확보 경쟁이 심화하면서 생산 기반이 흔들린다는 시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철강업계를 보면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철강 수요가 늘고 있지만 정작 전력 확보 경쟁이 심화하면서 생산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고 현지시각 지난 6월29일 보도했다.

특히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고철을 녹이는 전기로 제철소가 애로를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로 제철소는 미국 내 생산 과정에서 일일 최대 200메가와트시(MWh)의 대규모 전력을 소비한다. 가구당 일평균 전력 사용량을 8kWh로 보면 약 2만5천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 역시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인데 동일한 전력망을 두고 철강업과 경쟁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미국 중서부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13개 주와 수도인 워싱턴 D.C.의 전력망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 PJM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올해 1분기 담당 지역의 전력 도매가가 지난해보다 76% 상승했다”며 “내년 사업 지역에 연간 전력 공급 부족 규모는 6.6기가와트를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철강업뿐 아니라 화학산업도 전력 부족을 겪고 있다.

화학 전문매체 케미칼&엔지니어링뉴스는 AI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면서 화학 제조사가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구리와 알루미늄 등 금속 제련 업계 역시 데이터센터와의 전력 확보 경쟁으로 신규 제련소 건설이 가로막히고 있다.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반도체 패키징과 같은 분야 또한 AI 데이터센터와 전력 확보 경쟁에 따른 비용 상승 문제의 영향권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미국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제조업도 위협, 한국 기업 투자 악영향 가능성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제철과 LG화학 및 고려아연 등 한국 기업이 미국 생산 거점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픽 챗GPT로 제작>

◆ AI 데이터센터와 제조업 '전력 확보 경쟁' 심화

전력 확보 경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데이터센터가 소비할 전력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 국립 연구소가 지난 6월18일에 펴낸 보고서를 보면 2030년 미국 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미국 전체 전력 소비량의 최대 15.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데이터센터 업체가 밀려드는 투자를 기반으로 전력 확보 경쟁에서 높은 가격을 제시해 제조업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도 있다.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인 노르스크하이드로의 트론드 올라프 크리스토퍼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은 다른 산업보다 전력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데이터센터가 자금력을 앞세워 전력을 계속 확보하면 제조업 공장에서는 생산 기반 확대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철강업계 경영진들의 목소리를 인용해 “전력 회사가 데이터센터를 우선시하면 공장은 전력 부족으로 생산 중단 사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미국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제조업도 위협, 한국 기업 투자 악영향 가능성

▲ 2024년 4월3일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예트 퍼듀 리서치파크에서 SK하이닉스의 메모리 패키징 생산기지 신설을 알리는 투자 협약식이 열리고 있다. <퍼듀대학교>

◆SK하이닉스·현대제철·고려아연 미국 투자도 불확실성 커져

이러한 미국 내 전력 확보 경쟁은 현지 생산 거점을 꾸리려는 한국 제조업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들 한국 기업이 미국 내 전기료 상승에 따라 공장 건설비용이나 운영 비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매체 톰스하드웨어와 싱크탱크 디지털와치옵저버토리는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는 미국 내 반도체 같은 제조시설이 AI 데이터센터로 인해 전력 조달 비용이 늘어나며 투자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바라봤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현대제철과 LG화학 및 고려아연 등 반도체와 철강 및 화학과 제련 분야 주요 기업은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하고 생산 설비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에 2029년 가동 목표로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16일 제철소 건설에 투자하기 위한 미국 법인 설립에 14억6천만 달러(약 2조1500억 원)를 출자한다고 공시했다. 

LG화학은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30억 달러(약 4조6천억 원) 이상을 단독 투자해 전기차용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는 38억7천만 달러(약 6조 원)를 투자해 인디애나주 라파예트에 반도체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삼성전자 또한 텍사스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일러에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를 신설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투자 규모는 440억 달러(약 68조 원)에 달한다. 

미국에 핵심 광물 제련소 건립을 준비하는 고려아연도 전력 확보 경쟁의 사정권에 들 수 있다. 

고려아연은 운용자금과 금융비용까지 최대 74억 달러(약 11조5천억 원)를 투자해 2009년 가동을 목표로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제련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미국 내 전력 부족으로 한국 제조업 기업의 대미 투자 시기가 밀릴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해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는 과정에 인허가 절차가 전력 공급 확충에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철강제조협회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신규 발전소가 인허가를 획득하는 데 걸리는 절차에 평균 4년이 걸린다”며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이를 간소화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전기를 대량 소모하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미국에 우후죽순 생기면서 제조업 공장과 전기 쟁탈전을 벌여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에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투자은행 RBC의 자산운용 자회사인 RBC웰스매니지먼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제조업뿐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기술 기업마저 전력 제약으로 투자를 제때 이행하지 못할 수 있다”며 “이는 기업 가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