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하면서 공정위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간금융지주 도입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롯데그룹, 현대차그룹 등은 지배구조개편이 더욱 험난해지게 됐다.
박영수 특검은 3일 공정위를 압수수색한 이유와 관련해 “삼성 뇌물과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수사 자료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공정위를 향한 수사가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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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는 현행 금산분리 원칙을 거슬러 일반지주회사 아래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다. 19대 국회 때 관련법안이 발의됐으나 야권의 반대로 폐기됐고 20대 국회는 아직 발의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꾸준히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의지를 나타내왔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올해 업무보고에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는 삼성그룹 등 대기업의 지배구조개편과 무관하지 않아 공정위의 추진 의지에 의혹의 눈초리가 쏟아진 것도 사실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가 금산분리를 완화해 주는 등 특정 기업집단에 대한 특혜라는 문제 제기는 사실이 아니다”며 “다수의 금산복합 기업집단 누구라도 기업 여건에 맞게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그룹의 뇌물죄 대가성 여부 등을 수사하던 특검이 공정위를 조준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은 18대 국회부터 추진된 법안”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특검의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도입하려는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삼성그룹 등 몇몇 그룹을 위한 특혜성 법안이라는 의혹이 더욱 커져 법안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야권의 대선후보들이 금산분리 강화를 경제공약으로 내걸고 있어 차기 정부에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되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염두에 두고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해 온 주요그룹들의 구상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 현행법상 지주회사 전환이 제한된다. 특히 삼성생명은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를 처분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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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그룹은 그동안 삼성생명에 금융계열사 지분을 몰아주면서 중간금융지주회사 가능성을 열어놓고 준비해왔다. 하지만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불확실해지면서 다른 방향으로 지배구조개편을 모색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그룹, 롯데그룹, SK그룹도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되면 지배구조개편이 한결 손쉬워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더 어려운 길을 가야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정치권에서 순환출자 해소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지배구조개편이 필요하다. 지주회사를 설립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방안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떠오르지만 현대자동차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캐피탈 등 금융계열사 지분이 문제다.
롯데그룹도 최근 주요 계열사 인적분할을 예고하고 신 회장이 롯데제과 지분을 확대하는 등 지주회사 전환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롯데손해보험, 롯데카드, 롯데캐피탈 등 금융계열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SK그룹은 2015년 8월 SK와 SKC&C가 합병해 지주회사를 만들면서 올해 8월까지 SK증권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중간금융지주제도가 도입되면 SK증권 지분을 매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실상 시한 내 도입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지분 처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