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트럼프 정부가 대만과 무역 협상을 타결하며 TSMC의 미국 투자 등 사업적 결정에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앞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TSMC는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트럼프 정책에 발맞추고 있는데 최신 미세공정 투자 또는 인텔과 협력이 사실상 강제로 추진될 가능성도 떠오른다.
29일 외신을 종합하면 트럼프 정부는 이른 시일에 대만과 최종 무역 합의를 마무리하고 반도체 관련 협력 내용을 중요한 성과로 내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자국 매체 뉴스네이션과 인터뷰에서 “미국과 멀리 떨어진 대만에서 전 세계 반도체의 약 95%가 생산된다”며 “이는 절대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만이 중국 본토와 인접한데다 중국은 대만을 침공하겠다는 뜻을 숨기지도 않고 있어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일이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러트닉 장관은 “미국은 반도체 수요의 약 2%를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데 그쳤다”며 “내 목표는 임기 말까지 40% 이상으로 끌어올려 자급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대만을 향해 “국방 지원을 대가로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체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만과 무역 논의 과정에 반도체 공급망 관련 협상이 트럼프 정부 차원에서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뉴스네이션 진행자는 대만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지면 미국이 중국의 침공을 방어할 이유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러트닉 장관은 오히려 “대만이 세계 반도체 생산의 95%를 독차지한다면 미국이 안정적으로 대만을 지킬 능력을 구축하기는 어렵다”며 “이에 따라 양국이 반도체를 절반씩 생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결국 대만이 중국의 침공 위협에 미국의 지원을 받으려면 전 세계 거의 모든 공급망을 책임지는 TSMC의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미국으로 절반 가까이 옮겨야 한다는 의미다.
IT전문지 톰스하드웨어는 이를 두고 “러트닉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정부가 TSMC와 협력 관계를 더 확대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TSMC는 이미 미국에 5년 동안 1천억 달러(약 140조 원) 규모 투자를 약속했고 애리조나주에 신설한 첨단 파운드리 공장도 가동하고 있다.

▲ TSMC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파운드리 1공장 사진.
다만 톰스하드웨어는 TSMC가 아직 2나노와 같은 최신 공정을 대만에 이어 미국에도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확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국에 2나노 투자가 이뤄진다고 해도 시기는 2028년~2029년 사이로 예상된다. 대만에서는 올해 말부터 생산을 시작하는 것과 비교해 크게 늦어지는 셈이다.
결국 톰스하드웨어는 트럼프 정부와 대만의 협상이 TSMC의 최신 미세공정 생산라인을 미국으로 끌어와 세계 반도체 시장 지형도를 바꾸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TSMC가 미국에 첨단 반도체 투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을 직접 지원하는 역할을 떠맡게 될 가능성도 떠오른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재무 위기를 겪는 인텔의 지분 약 10%를 확보하는 대가로 보조금을 제공했다. 소프트뱅크와 엔비디아 등 민간 기업들도 뒤따라 지분 투자를 결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인텔은 애플과 TSMC에도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은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갖춘 유일한 미국 기업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정부의 반도체 산업 활성화 정책에 가장 중요한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엔비디아를 비롯한 업체들이 인텔이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미국 정부의 압박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온다.
인텔이 TSMC에 투자를 요청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 정부가 대만과 반도체를 비롯한 무역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전해진 소식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대만에서 제조되는 TSMC 반도체에 최고 10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협상카드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대만이나 TSMC가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어렵다.
이대로라면 TSMC가 미국의 요구에 따라 현지에 첨단 미세공정 투자 시기를 대폭 앞당기고 인텔에 자금 및 반도체 제조 기술을 지원하는 시나리오도 현실화될 수 있다.
결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의 침공 위협과 관세 정책을 앞세워 TSMC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대만이 불리한 조건으로 미국과 무역 협상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러트닉 장관은 뉴스네이션에 “대만과 무역 협정은 곧 발표될 매우 큰 뉴스”라며 “이른 시일에 본격적 협의를 통해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