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CATL이 유럽에서 한국 배터리 점유율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CATL이 다양한 제품군과 막대한 생산 능력을 발판으로 유럽 지역에 맞춤형 배터리를 판매하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사의 점유율 잠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맷 셴 CATL 유럽 총괄 책임은 10일(현지시각) 블룸버그를 통해 “고객사 관심에 맞춰 삼원계는 물론 LFP와 나트륨 배터리를 모두 생산하도록 헝가리 공장을 개조했다”고 말했다.
유럽 전기차 시장은 최근 2만 유로(약 3250만 원)대 중저가 차량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추세다.
이에 상대적으로 원가가 저렴한 LFP나 나트륨 배터리로 수요가 몰릴 가능성이 높은데 CATL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CATL은 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모빌리티 박람회(IAA)에서 유럽 맞춤형 LFP인 '셴싱 프로'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는 10분만 충전해도 478㎞를 주행하고 최대 주행거리는 758㎞에 달한다고 CATL은 전했다.
또한 CATL이 리튬보다 수십 배 저렴한 나트륨으로 만든 배터리까지 내놓으면 수주 경쟁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링보 주 CATL 최고기술책임자(CTO)는 8일 신화통신을 통해 “셴싱 프로는 유럽 고객의 운전 습관에 맞춰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CATL은 이미 BMW와 폴크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유럽 전기차 기업 가운데 90%를 협업사로 확보했다. 다앙햔 고객사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배터리 종류를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CATL은 생산 능력 측면에서도 유럽 수요를 감당해 낼 공산이 크다.
CATL이 2026년 초 가동할 예정한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은 최대 100기가와트시의 배터리 용량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100만 대분 용량이라고 한다.

▲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 모빌리티 박람회 IAA에 8일 관람객이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신차 '폴스타5'를 구경하고 있다. 폴스타5는 SK의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다. <연합뉴스>
이에 더해 CATL은 지난해 12월10일 스텔란티스와 스페인 사라고사에 연산 50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합작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CATL이 유럽에서 세 공장을 모두 가동하면 전기차 200만 대에 공급하고 남는 연산 210기가와트시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셈이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2024년에 유럽에서 팔린 전기차 신차가 모두 199만 대라고 집계했다. CATL이 현지 수요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CATL의 공격적인 유럽 사업 확장은 현지에서 배터리를 제조해 판매하는 한국 배터리 3사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유럽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가 높은 점유율을 보였는데 CATL이 이를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각각 폴란드 브로츠와프와 헝가리 괴드에 배터리 공장을 운영한다. SK온은 헝가리 코마롬과 이반차에 배터리 공장을 두었다.
물론 한국 배터리 기업도 현지 중저가 배터리 수요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지난해 7월 프랑스 르노에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한국 배터리 3사는 최근 실적 악화로 당분간 설비투자를 보수적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어 중저가 배터리 라인업을 확장할 여력이 부족하다.

▲ 독일 뮌헨에서 8일 열린 국제 모빌리티 박람회 IAA에서 관람객이 CATL 부스에 전시된 배터리 장착 전기차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더구나 중국 배터리 시장은 공급 과잉 상황이고 미국은 고율 관세로 진출이 어려워 CATL로서는 유럽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탄 리빈 CATL 최고고객책임자(CCO)는 7일 독일 뮌헨에서 연 배터리 출시 행사에서 “우리의 글로벌 사업은 유럽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CATL이 투자 여력을 앞세워 유럽에서 사실상 모든 배터리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생산 능력을 갖추면 K-배터리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블룸버그는 8월14일자 기사를 통해 “헝가리 데브레첸 주민들은 생활 용수 확보와 유독성 화학물질 배출 가능성을 걱정한다”며 CATL의 공장 운영을 우려하는 시각도 함께 전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