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PI 5000의 조건, 투명한 자본시장과 ESG 공시

▲ 코스피가 20일 장중 3000선을 돌파한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등을 통해 임기 중에 코스피 5000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의 제조업 강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한국의 자본시장은 여전히 '저평가의 덫'에 갇혀 있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이다.

2025년 현재 KOSPI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약 0.9배에 머물고 있다. 이는 미국(약 4.3배), 대만(2.0배), 일본(1.5배)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인 인도(4.0배), 말레이시아(1.2배), 태국(1.6배)보다도 낮은 수치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고 산업 구조가 유사한 신흥국에 비해서도 심각한 저평가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기업의 내재 가치나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현저히 낮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남북한 대치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부족,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 공시 투명성 미비 등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번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KOSPI 5000'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주가의 수치 상승이 아니라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 회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본시장 신뢰 회복의 조건은 투명한 정보 공개이다.

특히, 운용자산 규모가 2025년 기준 50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글로벌 ESG 투자자들은 점점 더 비재무 정보, 특히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정보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핵심 투자 지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ESG 공시에 대한 법제화나 공시 수준 모두 뒤처져 있으며, 그나마 공시하는 국내 상장사 상당수가 아직까지 정량적 정보보다는 모호한 정성적 서술 위주의 보고에 그치고 있다.

그 결과 블룸버그 ESG Disclosure Score 기준으로 한국 KOSPI200 기업의 평균은 35~40점대, 반면 말레이시아 주요 기업들은 50~60점대를 기록한다. 말레이시아는 이미 상장사에 대해 의무적 ESG 보고서 제출과 보드 차원의 지속가능성 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속가능성 정보에 대한 외부 감사 제도도 도입하고 있다. 신흥국임에도 정보 신뢰성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은 한국 자본시장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현재 ESG 정보 공시를 전면 법제화하지 않고, 일부 항목·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부분적 의무공시 체계를 마련 중인 한국 기업의 정보 공시는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취약하다.

첫째는 공시 범위의 애매성이다. 특히 사회(S) 영역에 대한 정량지표의 공시가 현저히 부족하고 선택적이며, 환경(E) 지표에서도 Scope3 배출량 공시에 대해 부정적이다.

둘째는 공시 정보의 신뢰성이다.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작성한 ESG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기 때문에 제3자 검증은 증가하고 있지만 외부 이해관계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기업이 공시한 정보의 신뢰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이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면 클수록 외국인 자본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하며, 이는 곧 디스카운트로 연결된다. 공시는 단순히 보고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와 기업 사이의 신뢰를 쌓는 유일한 경로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당연하게도, KOSPI 5000은 단순히 경기 상승이나 정부의 증시 부양책으로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시장의 질적 전환을 동반한 시장 프리미엄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구조적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ESG 정보공개의 의무화 및 표준화가 필요하다. EU CSRD나 말레이시아 증권위원회의 가이드라인(Guidelines on Sustainable and Responsible Investment Funds)처럼, 한국도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의 공시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사업보고서에 공시할 수 있도록 하며, 기업 부담을 고려하여 자산 2조 원 이상 대기업부터 시작하여 모든 상장사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정량 정보 중심의 보고체계를 강제하여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 2, 3), 여성임원 비율, 공급망 인권 실태 등 측정 가능한 지표 위주의 보고가 이루어져야 하며, 해당 정보는 외부인이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외부 검증 및 제재 장치가 도입되어야 한다. ESG 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제3자 검증을 의무화하고, 허위나 누락 공시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제와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넷째, 정보 접근성과 활용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 대상 영문 공시 확대, ESG 공시 통합 플랫폼 구축, 신뢰도 기반의 ESG 평가체계 정비 등 투자자가 정보를 ‘이해’하고 ‘비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부거래에 대한 엄격한 제재와 감시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내부거래는 “모든 시장 참여자가 동등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자본시장의 기본 전제를 허무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엄정한 감시와 강력한 제재는 자본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떠받치는 기둥이며, ESG 기반의 지속가능한 자본시장 구축을 위한 핵심 전제조건인 것이다.

정보는 자본의 방향을 결정한다. ESG 공시가 충실한 기업은 자본의 신뢰를 얻고 장기 투자자의 선택을 받는다. 반대로 ESG 정보가 부족하거나 불투명한 기업은, 실적이 좋아도 글로벌 펀드에서 제외되고, ESG 인덱스에서도 탈락하는 등 자본 접근에 불이익을 받는다.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이 글로벌 ESG 펀드 편입에서 탈락하거나, 공급망 인권 문제로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사례는 ESG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자본 유치의 필수 조건임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과 외국인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서는 정보공시가 자본시장 안정성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한다.

KOSPI 5000은 단순히 시장 낙관론이 아니라 정책, 제도, 기업의 신뢰성이 축적된 결과물이어야 한다. 정보공시, 특히 ESG 정보의 충실성과 투명성은 그 첫걸음이다. 말레이시아처럼 경제 규모가 작지만 신뢰 기반 시스템을 갖춘 나라와의 비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한국 자본시장이 진정한 프리미엄 시장으로 도약하려면, 정보 신뢰성의 혁신, ESG 공시 체계의 정비, 그리고 지속가능성과 책임을 향한 기업 문화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이 그 전환의 기로다.

돈이 부동산에만 몰리지 않고 건전한 산업구조 형성에 기여하는 선순환의 경제야말로 KOSPI 5000의 전제이자 목표일 것이다. ESG 금융운동을 지난 18년간 주도해온 입장에서 새 정부가 ESG 정보공시의 발빠른 도입을 통해 대한민국 금융 시장을 하루빨리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양춘승/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