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지분 없는 유한양행만 '밸류업', 상장 제약사 '짠내 배당' 속타는 개미들

▲ 5대 상장 제약사들의 시가배당률이 올해에도 최고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5대 제약사의 시가배당률이 올해도 최고 1%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사의 일반 주주들은 적은 배당에 불만을 제기하지만, 많은 주식을 보유한 오너 일가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어 배당 확대에 소극적이다.

오너 일가 지분이 없는 유한양행만이 배당을 유의미하게 늘리며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배당 시즌마다 주주 게시판에서는 5대 상장 제약사의 주당배당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대다수 기업들이 나서서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 배당금을 늘리는 주주환원정책을 외면한다는 비판과 실망감도 이어진다.

이들의 낮은 배당률은 오너 일가의 높은 지분율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오너 일가는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주당배당금(DPS)이 적더라도 오롯이 챙겨 가는 총 배당금은 많다. 

지난해 이들 제약사들의 최대주주가 지주사와 주요 사업회사를 통해 챙겨간 배당은 이장한 종근당그룹 회장 약 37억 원,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약 17억 원, 허일섭 녹십자그룹 회장 약 18억 원, 윤재승 대웅그룹 CVO(최고비전책임자) 약 6억 원이었다.

전자공시스템에 공시된 올해 주요 제약사들이 결정한 배당금을 살펴보면 유한양행이 450원에서 500원으로 올렸다. 대웅제약(600원)과 녹십자(1500원), 종근당(1100원) 지난해와 동일하다. 

시가배당률은 종근당 1.2%, 녹십자 0.9%, 대웅제약 0.5%, 유한양행 0.4%에 그쳤다.

유일하게 아직 배당금 규모를 발표하지 않은 한미약품은 지난해 결산배당(주당 500원) 기준 시가배당률이 0.14%에 불과했던 만큼 이번에도 최하위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사상 첫 분기배당(주당 250원)을 실시했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다. 

배당총액으로 비교하면 유한양행이 374억 원으로 가장 많고, 녹십자 171억 원, 종근당 138억 원, 대웅제약이 69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에는 배당금으로 93억 원을 책정했다.

눈에 띄는 점은 유한양행이 배당 총액을 지난해 321억 원에서 올해 374억 원으로 늘렸다는 것이다.

5대 제약사 중 유일하게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한 만큼 주주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현상은 제약사들의 탄생 배경과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시선이 나온다.
 
오너 지분 없는 유한양행만 '밸류업', 상장 제약사 '짠내 배당' 속타는 개미들

▲ 전통 제약사들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강해 재무적 투자자의 요구에 민감한 바이오기업과 달리 배당 정책 변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성을 덜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무료 이미지>


수십년 역사를 지닌 전통 제약사는 대부분 개인 약국에서 출발했다.

한미약품은 임성기약국, 종근당은 궁본약방, 녹십자는 수도미생물약품에서 시작했다. 대웅제약도 약국 운영자였던 윤영환 고 명예회장이 대한비타민산업을 인수하면서 탄생했다.

이들은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오너 일가의 개인 회사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적은 배당금으로도 높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복제약을 만들어 꾸준히 이익을 냈기에 외부 투자자들을 유치할 필요가 적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 결과 5대 제약사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지배력을 가지게 됐다. 2024년 9월 말 기준으로 대웅제약 특수관계인 지분은 61.51%이며, 녹십자는 51.42%, 한미약품은 41.41%이다. 이는 2023년 말 기준 자본시장연구원 보고서가 집계한 상장기업 특수관계인 지분 평균(39.6%)보다 높은 수준이다.

반면 유한양행은 오너 일가 지분이 없고 전문경영인과 유한재단이 15.92%를 보유하고 있다. 창립자 유일한 박사의 뜻에 따라 오너 일가가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있어 상대적으로 주주환원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제약사들의 ‘짠내 배당’ 관행은 오랜 기간 이어져 왔기에 단기간에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재무적 투자자의 요구에 민감한 바이오기업과 달리 전통 제약사들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이 강해 배당 정책 변화를 적극 추진할 필요성을 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기업들은 신약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를 하고, 지분을 가진 재무적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라 주주환원정책에도 신경을 쓰지만 전통 제약사들은 복제약과 유통 수익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유인책이 적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통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을 본격화한 지 오래되지 않아 미래 성장 동력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비를 비축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약품이 2015년 신약 개발로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성공을 거둔 이후 전통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산업은 제조업 기반에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기업이 영속하려면 배당도 중요하지만 연구개발 등에 필요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곳간을 쌓아둬야 하니 상대적으로 배당에 소극적인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지난해부터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동행하고자 제약바이오기업들도 주주환원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