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SMIC 반도체 자급체제 성과, "미국의 기술 규제가 '잠든 사자' 깨웠다"

▲ 중국 SMIC가 미국의 기술 규제 이전부터 정부 지원에 힘입어 연구개발을 지속하면서 자국 내 공급망 강화와 미세공정 반도체 상용화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SMIC 반도체 생산공장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파운드리 기업 SMIC가 정부 지원에 힘입어 미세공정 기술은 물론 반도체 장비를 비롯한 공급망 강화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대중국 기술 규제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에 주력해 온 결실이 최근 바이든 정부의 제재 강화를 계기로 더욱 돋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일 SMIC를 두고 “미국 기술에 의존을 낮추려는 시진핑 정부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챔피언 기업”이라며 “중국의 자급체제 구축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SMIC는 주로 화웨이를 비롯한 현지 고객사의 반도체를 위탁생산해 공급하는 파운드리 업체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경쟁사와 비교하면 기술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다수의 공정에 직접 개발한 기술 및 중국에서 확보한 반도체 장비 등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업체로 여겨진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SMIC를 상대로 한 수출 규제를 점차 강화하면서 해외 기업의 고성능 반도체 기술과 장비를 사실상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MIC는 장기간 의존해 오던 미국 기업의 장비 기술로부터 점차 거리를 두고 있다”며 “미국의 규제에도 살아남기 위한 중국의 생존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SMIC를 대상으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한 것은 중국이 첨단 군사용 기술과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우주항공 등 주요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트럼프 정부가 2019년부터 7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네덜란드 ASML의 EUV 장비 중국 수출을 금지한 이후로 SMIC를 겨냥한 기술 규제는 갈수록 강화돼 왔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SMIC는 이보다 이른 2017년부터 중국의 자체 반도체 장비 공급망 강화를 목표로 한 연구소를 설립하고 운영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 반도체 장비 협력사에 의존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자국 내 공급망을 구축해 완전한 자급체제 구축을 추진해 온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MIC의 이러한 노력은 미국의 규제 이후 자국산 장비 상용화에 기여헤 왔다”며 현재 다수의 중국 반도체 장비가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SMIC에 자금을 지원하며 자국 내 공급망 강화에 필요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SMIC가 지난해 화웨이와 7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개발 및 양산에 성공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결실로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SMIC는 여전히 반도체 생산라인에 다수의 해외 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완전한 자급체제를 갖춰내기까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다.

현재 SMIC의 7나노 반도체 생산에 활용되는 공정도 단가와 수율 등에 약점을 안고 있어 해외 파운드리 업체에서는 사실상 외면받은 기술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이 자체적으로 이러한 기술을 통해 미국의 규제를 어느 정도 우회할 수 있게 된 점은 무시하기 어려운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올해 전 세계 다른 국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반도체 생산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는 조사기관 게이브칼리서치의 예측을 전했다.

투자 금액의 상당 부분은 중국 정부의 지원금을 통해 충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 당국은 최근 480억 달러(약 66조 원) 규모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자국 기업 육성에 활용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규제가 SMIC와 중국 정부의 반도체 기술 개발 및 생산 투자 확대를 더욱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는 TSMC 전직 임원의 분석을 전했다.

TSMC 임원 및 SMIC 이사로 근무했던 양광리 대만 국립정치대 교수는 “(미국은) 대중국 규제 강화를 통해 ‘잠든 사자를 깨운 것’과 같은 상황에 놓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