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도 ‘신냉전’ 영향권, K배터리 복잡한 이해관계에 무게중심 위치 고심 

▲ 국내 배터리기업들이 신냉전체제로 재편되는 국제질서에서 중국기업과의 관계설정에 고심하게 됐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국제질서가 신냉전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국내 2차전지산업도 미중 대결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고 있다. 

국내 배터리 셀·소재 기업들이 중국기업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서방의 탈동조화(디커플링)에서 반사이익을 누릴 여지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국내 2차전지 밸류체인(가치사슬)이 원료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데다 중국의 막대한 시장 규모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위험을 관리하는 ‘디리스킹’ 전략 채택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2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국내 업체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진영의 탈동조화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이를 경영전략에 반영해 시장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현지 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진행한 한·미·일 정상회의는 한국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진영에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3국 정상은 이번에 채택한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중국’을 직접적으로 명시하며 중국의 확장적 행보를 견제하겠다는 뜻을 내보였다.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며 주변국과 빚고 있는 마찰, 중국과 대만 사이 양안문제 등도 3국 정부 공동성명에 담겼다. 

중국 측은 한·미·일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한·미·일 정상이 대만 문제 등으로 중국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중국의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했다”고 비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글로벌타임스는 논평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용 견인차가 돼 더 강하게 결속할 것이란 뜻을 표명함에 따라 지역 내 경제·무역 협력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미·중 갈등의 초기 국면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다소 거리를 두는 실리 위주의 외교정책을 채택했지만 갈등이 점차 고조됨에 따라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고 있다. 더구나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국이 친서방 기조의 외교노선을 채택하며 미국 쪽으로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충돌 지점으로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이런 국제정세 때문에 한국이 대립의 최전선에 다가서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산업계에서도 신냉전체제의 영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배터리업계 역시 미국 주도의 탈동조화 움직임을 주시하며 대응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배터리시장에서는 이미 탈동조화 추세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배터리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중국기업의 북미시장 진출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짙은 정책으로 꼽힌다. 북미와 우호국 내부 생산비중 강화를 독려하는 세제혜택을 담고 있는 데다 해외우려집단(FEOC) 지침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중국기업을 배제할 가능성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업계의 대표 격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셀 제조사들은 중국기업과 직접적 경쟁관계인 만큼 탈동조화 흐름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 셀 제조사인 CATL과 BYD는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성장해 국내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다투고 있다. 

배터리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상반기(1~6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28.7%로 1위를 차지했지만 CATL이 27.2%의 점유율로 턱밑까지 추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CATL과 BYD가 각각 36.8%, 15.7%로 1,2위에 올라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4.5%로 3위다. SK온은 5위(5.2%), 삼성SDI는 7위(4.1%)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북미에서 중국 배제 기조가 강화되면 중국 기업들의 가파른 추격세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북미는 유럽이나 중국과 비교해 전기차 침투율이 낮은 데다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하는 픽업트럭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대형차 수요가 많아 시장 잠재력이 매우 큰 곳으로 분석된다. 

다만 국내 배터리기업들도 원료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상황인 만큼 탈동조화 흐름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국내 기업들은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며 탈동조화를 일부 시도하고 있긴 하지만 단기간 내 중국 의존도를 극적으로 낮추는 것은 역부족이란 시각이 많다.

배터리 전문연구업체 우드매킨지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국가별 주요 리튬가공 기업 보유 숫자 현황에서 중국은 52.7%로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 공급의 약 3분의 1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원자재 컨설팅회사 CRU그룹의 2022년 조사를 보면 중국은 리튬 외에도 망간(95%), 코발트(73%), 흑연(70%), 니켈(63%) 등 다른 배터리 원료광물에서도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외 지역에서 중국기업과 합작을 하며 원료 확보에 나서는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북미, 남미 등지에서 중국 제련업체가 아닌 현지업체들과 함께 원료 광물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탈동조화에 대비하고 있다. 

다만 중국기업과 협력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중국 1위 코발트 생산업체 화유코발트와 배터리 재활용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새로 출범한 합작법인은 한국과 중국이 협력해 세운 중국 내 최초의 한중합작 배터리 재활용 기업으로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인 스크랩(Scrap)과 수거된 폐배터리 등에서 핵심 원재료인 니켈·코발트·리튬 등을 추출하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배터리 전 생애주기를 관리하는 자원 선순환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며 “화유코발트와 협력해 지속가능한 자원활용은 물론 재활용 부문의 고객가치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4월에도 리튬화합물 제조 분야 선두업체로 꼽히는 중국 야화와 아프리카 모로코 지역 수산화리튬 생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수산화리튬은 양극재 핵심 원료인 니켈과 합성하기 쉬워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하이니켈 고용량 전기차 배터리’의 원료로 쓰인다.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이자 원료 공급처인 LG화학은 양극재의 핵심 중간소재인 전구체 생산능력을 강화하며 소재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는데 역시 중국기업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2차전지도 ‘신냉전’ 영향권, K배터리 복잡한 이해관계에 무게중심 위치 고심 

▲ 전라북도 군산시에 위치한 새만금국가산업단지 모습.

LG화학은 4월 중국 화유코발트, 전라북도, 군산시, 새만금개발청, 한국농어촌공사 등과 전구체 공장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투자양해각서에는 LG화학과 화유코발트가 2028년까지 1조2천억 원을 투자해 새만금산업단지 6공구에 전구체 공장을 짓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올해 착공해 2026년 1차로 5만 톤의 양산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른 셀 제조사인 SK온과 소재기업 에코프로그룹도 중국 전구체기업 거린메이(GEM)와 양극재 중간소재인 전구체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며 공급망을 강화를 꾀하고 있다. 두 회사는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 연산 5만 톤 규모의 전구체 공장 착공을 추진한다.
 
에코프로그룹은 지난해 지분 투자한 인도네시아 니켈 제련기업 QMB로부터 니켈을 공급받고 있는데 QMB 역시 중국 거린메이가 운영하는 곳이다. 에코프로그룹은 원료 광물부터 중간소재에 이르기까지 중국기업과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국내 배터리기업들이 중국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디리스킹’ 전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디리스킹은 원래 위험을 줄인다는 의미이지만 최근에는 중국과 관계를 단절하는 탈동조화(디커플링) 대신 관계를 유지하면서 위험 요소를 줄여나간다는 의미의 외교전략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 부회장은 9일 서울 서초구 산업기술진흥협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배터리기업과 중국기업의 협력 관련 리스크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미국이 지정할 해외우려단체 관련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중국과 협력이 불가피하다면 일단 추진하고 해외우려단체 지침이 구체화하면 그 때 다시 대응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대답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