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에 발목 잡힌 해상풍력, 덴마크처럼 정부 주도로 입지 찾아야 [기후의 해법들](2)

▲ 정부도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 규모를 12GW(기가와트)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대체할 수 있는 규모다. 사진은 두산에너지빌리티의 8MW 해상풍력발전기. <두산에너지빌리티>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 대응에 ‘게임 체인저’로 여겨지는 재생에너지가 있다. 해상풍력이다.

해상풍력은 다른 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이나 육상풍력보다 입지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육상풍력과 비교해봐도 대규모 단지 개발, 대형화가 가능하고 강한 바닷바람을 통해 더 높은 이용률로 많은 발전량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도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 규모를 12GW(기가와트)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대체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해상풍력 보급 현황과 전망을 놓고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에 보급된 해상풍력 용량은 모두 0.12GW로 2030년 목표와 비교해 1%에 그치기 때문이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보고서 '해상풍력 인허가 문제점과 개선방향'과 유튜브 영상 ‘우리나라가 해상풍력이 안 되는 이유 알려드림’을 통해 문제의 근원과 해법을 제안한다. 

해상풍력 보급 지연의 원인으로 기후솔루션은 최대 10개 부처를 거쳐야 하는 인허가 절차를 지적한다. 

해법은 단순하다. '해상풍력 강국' 덴마크가 그러하듯 계획입지제도를 도입해 인허가 기간과 절차를 줄여주는 것이다.
 
먼저 인허가 절차가 어떻게 해상풍력 확대를 지연시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정부는 2010년 11월 2019년까지 세계 3대 해상풍력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 아래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계획에서 2019년까지 국내 해상풍력발전 규모 2.5GW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바로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개발 사업이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신인 지식경제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준비하고 있는 해상풍력 규모는 모두 153.9GW로 세계 육상풍력 설치용량인 159GW와 유사한 규모”라며 해상풍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한 달 뒤인 2010년 12월 지식경제부는 ‘해상풍력 추진단’을 발족하고 “해상풍력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관련 제도를 발굴할 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 관련 인허가 및 제도개선 업무를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개발 사업은 원래 2011년부터 2019년까지 3년씩 3단계로 나눠 진행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3년까지 1단계인 실증단지(100MW) 단계, 2016년까지 2단계인 시범단지(900MW) 단계, 2019년까지 3단계인 확산(2.5GW) 단계다. 

그러나 사업은 당초 정부의 계획이나 약속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최종 완공 목표 시점으로부터 벌써 4년이 지났는데 아직 이곳에 설치된 해상풍력 용량(실증단지)은 60MW로 아직 1단계도 달성하지 못했다. 2019년 목표의 2.4% 수준이다.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면서 사업 현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만난 이정민 기후솔루션 피디(PD)는 2019년 목표를 2030년까지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복잡하고 많은 현재의 인허가 구조와 비효율적 절차가 해상풍력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인허가에 발목 잡힌 해상풍력, 덴마크처럼 정부 주도로 입지 찾아야 [기후의 해법들](2)

▲ 정부는 서남해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2011년부터 2019년까지 3개년씩 3단계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 당초 계획의 1단계인 실증단지 수준에 머물러있다. 기후솔루션은 이를 놓고 정부의 비효율적 해상풍력 사업 절차를 지적한다. <기후솔루션>

이 피디는 해상풍력 보급이 더딘 이유를 놓고 “너무 많고, 복잡하고, 비효율적 허가 절차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효율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과거 산업단지의 사례에서처럼 많은 인허가가 통합적으로 관리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해상풍력 발전기를 건설할 때는 환경영향평가, 군 작전성 검토, 해상교통안전진단 등 최대 10개 부처의 29개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문제가 국내 해생풍력 보급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에너지공단 추산에 따르면 국내의 해상풍력 인허가 취득 과정은 최소 68개월로 5년이 넘게 소요된다.

양예빈 기후솔루션 재생에너지 인허가팀 연구원은 “지금의 해상풍력 인허가 구조에서는 따로따로 일일이 받아 비효율적이고 불확실성이 크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은 해상풍력 보급에 속도가 나기 위한 해결 방안으로 ‘정부 주도의 계획입지제도’를 꼽았다.

해상풍력의 계획입지제도란 정부가 발전에 적합한 구역을 선정하고 이 구역의 환경생태, 어업활동, 경제성 분석,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직접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재 전력 사업자가 직접 이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것과 비교해 사업 진행의 속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방안이다.
 
인허가에 발목 잡힌 해상풍력, 덴마크처럼 정부 주도로 입지 찾아야 [기후의 해법들](2)

▲ 기후솔루션은 정부 주도의 '계획입제도' 도입을 통해 해상풍력 보급 지연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해상풍력 계획입지제도란 정부가 해상풍력 가능구역을 설정해 해당 지역의 환경생태, 어업활동, 경제성 분석,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직접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기후솔루션>

육근형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환경공간연구실 실장은 기후솔루션 유튜브 영상에서 “그동안은 전력 사업자가 본인들의 입지를 찾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바다는 공공이 소유한 공유수면”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국가가 나서서 해상풍력 입지를 사전에 결정하는 정부의 계획입지제도가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바다 공간을 해상풍력에 사용해도 되는지 정부가 미리 지정해서 알려주고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담당해주면 관련 인허가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는 이미 해상풍력의 계획입지제도가 활성화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표적인 국가가 덴마크다. 덴마크는 1991년 세계 최초의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 뒤 해상풍력 강국으로 떠올랐다.

덴마크는 정부가 주도해 해상풍력 계획입지를 선정하고 계획된 입지에 공개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한다. 이와 함께 계획입지 외에 사업자가 직접 적합한 입지를 발굴 및 개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과 함께 재생에너지 보급이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에서도 2019년 ‘재생에너지 해역이용법’을 통해 해상풍력 계획입지제도를 도입하고 보급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계획입지제도 도입과 동시에 인허가 창구 단일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양 연구원은 “과거 산업단지가 조성될 때도 인허가 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많은 기업들과 지자체의 요구에 따라 정부가 산업단지 규제개선 방안 등을 내고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례법이 만들어졌다”며 이런 사례가 해상풍력에도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는 뜻을 내놨다.

이 피디는 “유럽연합(EU)은 지난해 5월 재생에너지 전반에 관한 정책인 ‘리파워EU’를 내놨는데 여기에 재생에너지 인허가 절차를 줄이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며 “비슷한 시기에 영국도 해상풍력 인허가 기간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고 설명했다.
 
인허가에 발목 잡힌 해상풍력, 덴마크처럼 정부 주도로 입지 찾아야 [기후의 해법들](2)

▲ 기후솔루션은 계획입지제도 도입과 함께 해외와 같이 인허가 절차 간소화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5월 발표된 유럽연합(EU)의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 '리파워EU'에는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는 인허가를 단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담겨 있다. <기후솔루션>

덴마크에너지청은 해상풍력 관련 인허가를 원스톱(One-Stop)으로 처리하는 단일창구 기능을 하며고 있다. 비효율적 행정절차에 따른 사업 불확실성을 크게 줄였다.

기후솔루션이 제시한 대안들은 최근 국회에서 소위 ‘해상풍력특별법’이란 이름으로 논의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5월 대표발의한 ‘풍력발전 보급촉진 특별법안’,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과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3년 2월 각각 대표발의한 ‘해상풍력 계획입지 및 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안’, ‘해상풍력 보급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안’ 등 3건이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를 통해 병합심사를 거치고 있다.

3건의 특별법안은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정부 주도의 계획입지제도 도입과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해상풍력발전위원회 및 해상풍력발전추진단 설립을 공통의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상풍력특별법 제정안이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소위 심사 및 상임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빠르게 넘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 연구원은 “지난해 말부터 해상풍력 관련 특별법이 제정될 것이란 분위기가 있었지만 수 개월째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기존에 사업을 확보한 사업자를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하는 등 여전히 과제가 남아있다”며 “결국 해상풍력 보급 확대가 목적인 만큼 계획입지제도 도입 및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위해 관련 법이 신속히 통과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상유 기자
 
[편집자주] 폭염, 가뭄, 산불, 홍수, 생태계 파괴 등 급격한 기후변화에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산업화 이후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의 여파가 다시 인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세계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과 해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비즈니스포스트와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은 현재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진단하고, 그 해법들을 다루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비즈니스포스트는 기후솔루션의 문제 제기와 대안 제안 시리즈를 지면으로 전한다. 더 상세한 현장 상황과 문제, 해법 설명은 기후솔루션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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