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정부의 ‘왕수석’으로 알려진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의 존재감이 갈수록 커진다.

이 수석은 민감한 현안과 관련한 발언을 늘리면서 국정 장악력을 높이고 있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내각·대통령실 개편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관섭 수석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인다.
 
민감한 사안 주도 대통령실 '왕수석' 이관섭, 국정 장악력 높이며 존재감 커져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6월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중추로서 정책 방향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관섭 수석의 발언이 정부 정책으로 연결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언론개혁 시도다. 이관섭 수석은 2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윤석열 정부의 낮은 지지율과 관련해 “저희가 느끼기에는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 수석의 발언 사흘 만인 5일 대통령실은 관계 부처에 KBS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법령 개정을 제안했다. 이어 차기 방송통신위원장에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보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 정부가 언론정책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수석은 휴일인 4일 이례적으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수석은 국가보조금과 관련해 1조 원대 사업 부정 집행 가능성이 있고 비리가 확인된 금액만 314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튿날 윤 대통령은 민간단체 보조금 비리를 철저히 단죄하고 환수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관련 정책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관섭 수석은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정부의 3대 개혁 추진을 놓고 “미래를 위해, 표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어려운 과제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 핵심 국정과제를 앞장서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수석이 맡고 있는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라는 직책 자체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부 산하의 정책을 종합하는 동시에 그를 검토하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정부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초반 대통령실 간소화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 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던 정책실장 자리를 없앴다. 그러나 정책 혼선이 벌어지자 정책기획수석을 새롭게 만들고 이관섭 수석을 임명했다.

2022년 9월에는 정책기획수석의 명칭을 국정기획수석으로 바꿨다. 지난해 12월에는 국정기획수석 산하에 정책조정비서관을 추가 편제해 국정기획수석의 국정과제 컨트롤 타워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현재 국정기획수석은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가운데 최선임 수석비서관이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은 위상에 걸맞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10월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의 유병호 사무총장이 “오늘 또 제대로 해명 자료가 나갈 것”이라며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라는 내용의 업무 보고 성격 문자를 이관섭 수석에게 보낸 것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단순한 사실 확인을 위한 문자였다고 해명했다.
 
민감한 사안 주도 대통령실 '왕수석' 이관섭, 국정 장악력 높이며 존재감 커져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022년 10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감사원 국정감사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고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의 출석 등을 요구하고있다. <연합뉴스>


이관섭 수석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빈 자리를 메우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 장관 탄핵소추안 의결 뒤 이 수석에게 대응방안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과 행안부의 협업 창구가 이 수석을 중심으로 일원화되면서 행정부 내부에서의 이 수석 영향력도 커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관섭 수석은 노동정책에도 관여하고 있다.

5월3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 확대회의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등 고용노동부 인사와 함께 대통령실에서 이관섭 국정기획수석과 김민석 고용노동비서관이 자리했다.

노동문제를 전담하는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 있음에도 이관섭 수석이 참석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경제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3월 이 수석이 노동정책을 총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근로시간 69시간제도 개편안과 관련해 관계 부처와 대통령실, 여당 사이 혼선을 일으킨 것이 부각되자 나온 조치로 읽힌다.

이관섭 수석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정책뿐 아니라 정무적 조언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수석이 관료 출신으로 전문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국민 여론, 국회 상황까지 전부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수석은 산업부 시절부터 정무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을 1년 앞두고 대통령실 개편·내각 개각 소문이 커지고 있어 이관섭 수석의 거취도 관심사로 떠오른다.

현재 대통령실 수석급에서 정치인 출신인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이진복 정무수석 등은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수석급 가운데 내년 총선에 출마할 사람이 적지 않은 만큼 물갈이가 이뤄지면 대통령실 내에서 이관섭 국정기획 수석의 존재감이 더 커질 것이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이 수석이 김대기 비서실장의 뒤를 이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관섭 수석이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인 신임 한국전력공사 사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얘기 또한 나오고 있다.

정치권과 에너지업계 일각에서 사장 후보군에 이 수석이나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창양 장관이 한전 사장으로 가게 되면 이관섭 수석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다만 후임 한전 사장을 두고 박일준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 등 많은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만큼 이 수석이 대통령실을 떠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이관섭 수석은 1961년 대구 출생이다.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상공부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산업 관련 부처에서 경력을 쌓은 관료 출신 베테랑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2016년 공직생활을 마쳤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2016년부터 역임했다. 사장 임기를 절반 정도 남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한수원 사장직을 사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고 있을 때 한수원 사장으로서 수사대상에 오른 적도 있다.

이관섭 수석은 한수원 사장이던 2017년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결정 때문에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게 배임 혐의로 고발당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지검장을 맡고 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 8부에 배당됐다. 검찰은 공사 일시중단 결정을 직권남용으로 보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2019년 4월 사건을 각하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