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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미국 노동시장 과열이 인플레 주범일까

정의길 egil@hani.co.kr 2023-01-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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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미국 노동시장 과열이 인플레 주범일까
▲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이 1월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중앙은행 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미국 연준은 미국 노동시장 과열을 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경기침체도 불사하면서 고금리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 EPA/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금리인상이 최선인가?

미국의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전례 없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일자리 및 임금 축소이다. 일자리 창출, 임금으로 대표되는 소득 증가는 경제 운용의 목적이고, 미국의 역대 정부가 하나같이 추구한 목표였다.

그런데, 이제 미국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경제의 근본 목적도 훼손하겠다는 분위기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지난달 14일 0.5%포인트 금리인상을 결정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뒤 “성장은 둔화되고 있지만 실업률이 거의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노동시장은 과열돼 있다”며 “빈 일자리가 여전히 많고 임금은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주범이 노동시장에 있다고 지목했다. 즉, 기업에게 노동력이 부족하고, 임금은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가 지난 4일 발표한 한 11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의 구인건수는 1046만 건으로 집계됐다. 10월의 1051만건보다 조금 감소했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2001년 집계를 시작한 미국의 구인건수는 2021년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은 이후 계속해서 고공행진 중이다. 11월 구인건수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팩트셋의 예상치 1000만건을 웃돌았다.

자발적 퇴직자 수는 전월보다 12만6000건 늘어난 417만명을 기록했다. 18개월 연속 400만 명을 넘어서, 역대 최장기를 기록 중이다.

‘자신의 의지 혹은 능력에 따라 일자리를 떠난’ 자발적 퇴직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더 높은 급여와 혜택을 제공하는 다른 일자리가 많다는 의미이다. 연준이 중시하는 실업자 1명 당 구인건수 배율도 전월과 동일한 1.7로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1.2배)을 크게 상회했다. 실업자 1명 당 일자리가 1.7개가 있다는 의미이다.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라고 불릴 정도로 인플레 퇴치가 주 임무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높고,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은 경제에 치명적인 독으로 모든 경제 주체들, 특히 노동자 등 약자들이 고통을 더 짊어지게 된다.

하지만, 최근의 미국 인플레이션 동향은 과연 노동시장 호황을 의도적으로 죽여 버려야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인플레이션과 관련된 가장 최근의 통계를 보자.

지난 11월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7.1%가 올랐다. 이는 10월의 7.7%에 비해 낮아진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 9.1%로 4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뒤 다섯달 연속으로 둔화됐다. 변동성이 큰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11월에 6.0% 상승했다. 10월의 6.3%에 비해 둔화됐다.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율은 지난 6개월 동안 4.8%였고, 지난 3개월 동안은 3.6%였다. 11월에는 1.2%였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 석유가격의 급락 등으로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제어되고 있는 양상이다. 또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고 있는데, 이는 공식 통계에 아직 반영되지 않고 있다. 새해 들어 주택가격 거품이 반영되면 인플레이션율 하락은 눈에 띌 것이다.

연말이 되자, 인플레이션은 1~2% 정도로 코로나19 팬더믹 전의 수준으로 돌아가고, 노동시장은 거의 완전고용 상황이 됐다. 이는 완벽한 상황은 아니나 고무적인 측면도 있다. 노동시장까지 죽여가면서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퇴치할 수도 있지만 무척 어려울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루스벨트연구소’에 보낸 ‘오늘날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대응’이라는 글을 통해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때의 구호금 등 과도한 재정지출이 원인이어서, 이를 퇴치하는 데는 높은 실업률이 동반되는 오랜 기간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배격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다양한 분야별 공급적체에다가 수요 변화가 맞물린 가격 상승이 주요한 동력이 됐다고 진단했다.

스티글리츠의 주장은 지난해 초 인플레이션 원인 논쟁을 다시 상기시킨다.

당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 재정지출과 통화를 푸는 양적완화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공급망 혼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맞섰다.

이 논쟁은 인플레가 심각해지면서 서머스의 판정승으로 끝났으나, 인플레의 원인이 확실히 규명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들어서는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자,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통화팽창도 있지만 코로나19에 겹친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대결로 인한 공급망 재편 등도 큰 영향을 미친을 것으로 진단된다.

이 때문에 스티글리츠는 <프로젝트 신디게이트> 기고문에서 “잘 겨냥된 재정정책 및 더 정밀하게 조율된 대책들이 잠재적으로 부작용이 큰 통화정책 보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품가 인상에는 오래된 농업보조금(농민들이 더 많은 생산을 독려받아야 함에도 생산에 나서지 않도록 만드는 가격보조정책)을 되돌리고, 반독점 강화, 서민들의 주거안정 위한 새로운 주택투자 등을 권고했다. 특히, 노동력 부족에는 아동복지, 친이민정책, 임금상승 및 노동조건 개선 등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노동시장 과열은 코로나19로 인한 ‘대 퇴직’(great resignation) 조류와 이민억제책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코로나19로 자발적 은퇴가 늘어난 가운데 미국의 전통적인 인력 공급로였던 이민이 줄어들었다.

팬데믹 시기 조기은퇴한 인력이 200만명이고,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100만명 가량 된다. 팬데믹 이후 감소한 이민자 수가 50만명 정도 된다. 약 350만명의 현실적, 잠재적 노동인력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공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구직 수요 약 1천만개 일자리와 실업자 수인 600만명 사이에서 채워지지 않는 약 400만개의 일자리와 비슷한 숫자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이민의 문을 다시 확대하는 한편 시장에서 떠나간 은퇴자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약 40년간 소득불평등이 심화됐다.

최근의 임금인상과 완전고용 상황은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할 기회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퇴치한다면서 그 주범이라는 노동시장의 과열을 잡기 위해 금리인상을 통해 경기침체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경기를 침체시켜서 일자리 수요를 줄여서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것이다.

금리가 10년 이상 동안 거의 제로금리에 머문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이를 정상화시키는 것은 타당하고, 지금까지의 금리인상도 불가피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금리인상의 목적이 노동시장을 억누리기 위해서, 그래서 중하류층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억제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방향일 수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인플레이션의 미식축구 게임 이론’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인플레이션은 축구장에서 좋은 장면을 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중들의 연쇄 효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를 했다.

즉, 경기가 흥미진진해지고 결정적 장면이 벌어지면, 관중이 흥분해서 그 장면을 더 자세히 보려고 일어서면 다른 관중들도 따라서 일어나서 결국은 모두가 경기 장면을 제대로 못보아서 모두가 피해보는 사태라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따지고 보면 흥미진진해지는 게임인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게임을 재미없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즉, 인플레이션의 원인에는 경기 활성화라는 측면도 있고, 특히 최근 인플레이션이 노동시장 과열에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기를 침체시키고,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와 임금을 축소하는 것은 마치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고, 게임을 재미없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금리인상도 좋지만, 차제에 항구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좋은 기회이고, 이를 위해 근본적인 사회적인 대책이 더 절실한 이유이다. 정의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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