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중국 전기차 배터리기업 비야디의 지분 10%를 사들였다. 그는 사람들의 삶에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될 소비재를 중심으로 성장주와 가치주에 장기투자하는 투자자로 유명하다.
비야디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여서 워렌 버핏의 결정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반응도 있었으나 비야디는 2022년 1월 기준 약 138조 원 규모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글로벌 배터리·전기차기업이 됐다.
▲ 왕촨푸 비야디 회장이 2017년 4월 신형모델 발표회에서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자체 전기차를 개발해 생산하려던 애플도 한동안 비야디와 배터리 공급에 관련해 논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촨푸는 ‘배터리 대왕’이란 별명에 이어 ‘전기차 대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때 비야디 모델의 자연발화 사고로 여러 차례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비야디의 이미지도 큰 타격을 입었다. 왕촨푸는 직접 전면에 나서 안전을 강조하고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을 지휘하며 이미지 쇄신에 힘을 쏟았다.
◆ 안전하고 오래 가는 배터리 본연의 경쟁력 강화
왕촨푸는 ‘안전함’이야말로 훌륭한 전기차의 핵심 조건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021년 4월7일 중국 충칭시에서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한 신형모델 발표회가 열렸다. 왕촨푸는 "몇 년 전 전기차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주행거리 데이터로 경쟁이 붙었고 업계에서는 배터리 에너지밀도에 관한 기준을 비이성적으로 높여 잡았다"며 "기업들마다 기술 수준이 다르고 삼원계리튬 소재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전기차의 자연발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말했다.
왕촨푸는 중국에서 하루 평균 60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는데 앞으로 전기차가 완전히 보급된 상태에선 자연발화나 자연폭발 같은 사고가 교통사고 원인의 대부분이 될 것으로 봤다.
그는 “배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고 기술력에 관한 신뢰가 떨어지면 인류의 지속 발전 가능성도 논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이는 왕촨푸가 안전성과 주행성능을 대폭 개선한 블레이드 배터리 개발에 전력투구한 핵심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비야디는 2020년 3월 1회 충전 뒤 주행거리가 600km에 이르는 블레이드 배터리를 공개했다. 그리고 2021년 10월25일에는 테슬라와 모두 10GWh 규모의 블레이드 배터리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블레이드 배터리 공개 당시에는 고객사나 소비자로부터 큰 신뢰를 얻지 못했으나 지금은 세계 1위 전기차기업인 테슬라도 비야디의 블레이드 배터리를 구매할 만큼 기존의 약점을 극복한 배터리라는 인정을 받고 있다.
왕촨푸의 설명에 따르면 블레이드 배터리는 안전, 내구성, 수명, 에너지밀도, 주행거리 등 5가지 부분에서 최고 성능을 갖추고 있다. 블레이드 배터리는 전기차 시장의 건강한 발전을 이끌어낼 것이며 기름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2021년 4월7일 신형모델 발표회에서 왕촨푸는 “지난 1년 동안 중국 시장에 총 1127가지 자동차 모델이 판매됐었는데 이 가운데 43가지 모델의 월간 판매량은 1만 대를 돌파했고 또 이 가운데 20만 위안(3800만 원) 이상 고급 세단은 8가지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월간 판매량이 1만 대를 넘은 중대형 세단은 벤츠, BMW, 아우디를 빼면 비야디의 한(汉) EV이다”며 “중국 자동차의 60년 역사상 중국산 중대형 세단이 연속으로 월간 판매량 1만 대를 넘긴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왕촨푸는 한 종류의 모델이 이처럼 좋은 판매기록을 세운 것은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해 소비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안전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안전은 훌륭한 전기차의 핵심 조건이며 오늘부터 비야디는 전체 전기차 모델에 블레이드 배터리를 탑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발표회에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반도체 부족 위기를 놓고 “비야디는 일찌감치 자동차용 반도체 자체 개발을 해왔으며 이런 업계 리스크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특히 2008년에 처음 출시한 F3DM배터리, 2020년에 발표한 블레이드 배터리 모두 핵심 부품과 기술은 모두 비야디에서 직접 연구개발한 뒤 제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덕분에 2021년 세계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이 덮쳤을 때 비야디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비야디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판매했는데 2021년 연간 판매량이 60만4783대로 2020년보다 220%가량 증가했다.
중국 내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14.5%로 1위를 차지해 테슬라를 넘고 선두에 올랐다.
◆ 중국 넘어 글로벌 전기차시장 넘본다
왕촨푸가 설정한 비야디의 자동차 모델 이름을 보면 탕(唐), 쑹(宋), 위안(元) 등 중국 왕조 이름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가 맞다.
이외에도 여러 왕조 이름으로 출시한 자동차 모델들이 중국과 여러 해외 국가에서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자동차 내부 부품의 인식번호도 중국어로 되어 있다.
▲ 비야디의 전기버스는 영국에 1천 대 이상 팔렸다.
소비자도, 업계 관계자도 수출용 전기차 인식번호를 중국어로 새기는 것을 여러 모로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왕촨푸는 한자에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왕촨푸는 2021년 3월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왕촨푸는 창업 초기엔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다면 규모가 있는 기업으로 키운 이후에는 중국인으로서 한을 풀기 위함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미국 출장을 떠난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국 입국장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데 계속해서 귀국 티켓을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치 미국에 불법으로 눌러 앉을 사람처럼 대했는데 자신은 미국에서 그러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했다.
왕촨푸는 “중국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가 유구한 한자를 들고 있다는 점인데 사용 못 할 이유가 없다. 어떤 사람은 해외에 판매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괜찮다.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감당한다. 판매량이 조금 줄어드는 것은 아깝지 않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제로 비야디 전기버스를 제외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해외 판매실적은 부진하다. 비야디는 그동안 내수시장에만 집중하면서 글로벌 사업전략에 미비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비야디는 2021년 여름 유럽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첫 대상으로 노르웨이에 진출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싱가포르에 위안(元) 플러스 모델을 내놓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현재 전기버스를 수출한 일본, 미국, 영국, 칠레 등 국가에서 큰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주력사업인 전기차로 해외사업 역량을 공격적으로 키워나간다는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비야디의 전기버스 판매량은 현재까지 누적 5만5천 대를 넘어섰고 모두 50여 개 국가, 300여 개 도시에 판매됐다. 특히 일본 전기버스시장에서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비약적 성장을 거뒀고 영국에 판매된 전기버스는 1천 대를 넘었다.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는 전기버스 가운데 약 80%가 비야디의 전기버스다.
샤오펑(小鵬), 니오(蔚來), 리오토(理想) 등 신생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이 바짝 뒤쫓고 있는 점도 왕촨푸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이들은 비야디보다 실적 측면에서 아직 뒤처지고 있지만 브랜드 평판이나 영향력, 디자인 부분에서는 비야디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BMW, 벤츠, 아우디 등 고급 자동차 이용자들도 중국 신생 전기차 브랜드를 선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량 성능은 물론 감각적 디자인까지 더해져 20~40대 부유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왕촨푸는 배터리와 전기차를 동시에 개발·제조하는 기업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앞세운다. 안전성과 뛰어난 주행 성능을 갖춘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100년 브랜드 역사를 이루겠다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