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캐스퍼’가 국내 경형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시장에서 수요를 계속 창출할 수 있을까?

19일 완성차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캐스퍼가 사전예약 흥행으로 초기에 불거진 가격 논란을 딛고 경형SUV 수요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현대차 캐스퍼 안착은 아직 장담 못 해, 경차 외면과 싸움은 이제 시작

▲ 현대자동차 '캐스퍼'.


캐스퍼는 사전예약 시작 당일인 14일에만 1만8940대 접수됐다. 현대차가 여태껏 출시한 내연기관차의 사전예약 첫날 최다기록을 새로 쓴 것일 뿐만 아니라 올해 생산 예정 대수인 1만2천 대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캐스퍼의 기대감이 얼마나 높은지 잘 보여준다.

사전예약 첫날 공개된 캐스퍼 가격을 놓고 다소 비싸게 출시됐다는 평가가 있었던 터라 캐스퍼의 흥행을 장담하기 힘들어 보였다.

캐스퍼 판매가격은 트림(등급)별로 △스마트 1385만 원 △모던 1590만 원 △인스퍼레이션 1870만 원 등으로 책정됐다.

최고급 트림인 인스퍼레이션에 옵션을 몇 개만 얹으면 가격이 2천만 원을 넘어가는데 이는 준중형세단이나 소형SUV와 가격대가 겹친다.

자동차 커뮤니티에 ‘800만 원대라는 소문은 믿지 않았지만 2천만 원대라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시장의 대세가 된 SUV라는 특징에다 디자인 호평까지 더해지면서 가격 논란을 이겨내고 있다.

물론 캐스퍼 사전예약에 일부 허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보통 차를 사전예약할 때 대리점에 가야 하지만 캐스퍼는 온라인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사전예약을 할 수 있었다. 사전예약 때 내야 하는 계약금 10만 원은 본계약을 진행하지 않으면 수수료 없이 전부 돌려준다.

편하게 사전예약을 할 수 있었던 만큼 차 구매를 확정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사전예약 접수를 해놓은 소비자층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캐스퍼가 국내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많다.

국내 경차시장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는데 캐스퍼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가장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국내 경차시장의 규모는 2012년 20만2800대가량이었으나 2019년 기준 11만5800대가량으로 대폭 줄었다. 캐스퍼를 위탁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 출범을 앞두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현대차, 기아, 한국GM 등 노조가 일제히 경형SUV 생산을 반대한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한국 완성차기업들이 경차를 좀처럼 출시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현대차 아토스, 기아 비스토, 대우자동차 티코·마티즈 등이 있었다. 하지만 아토스와 비스토는 출시 5년만에 모두 단종됐으며 그나마 티코와 마티즈가 10년여 동안 명맥을 유지했으나 저조해진 판매실적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한국 완성차기업 5개 회사 가운데 르노삼성차와 쌍용자동차는 아예 경차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GM은 스파크를 보유하고 있지만 2022년 10월 단종이 예정돼 있다.

현대차가 캐스퍼 출시로 아토스 단종 이후 19년 만에 경차시장에 복귀했지만 시장수요를 늘리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 수 있다.

물론 캐스퍼가 경차와 SUV의 특징을 결합한 차라는 점에서 과거 아토스, 비스토, 티코, 마티즈 등과 다른 행보를 걸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차에서 숙박을 하는 ‘차박’ 열풍이 SUV 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캐스퍼가 특정 수요를 자극하는 맞춤형 차종으로 자리매김할 공산도 크다.

실제로 현대차는 캐스퍼의 강점으로 뒷열 좌석뿐 아니라 운전석과 조수석까지 앞으로 완전히 접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을 꼽는다. 이른바 ‘폴딩’ 기능을 모든 좌석에 넣은 것인데 이는 차박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은 만큼 차박을 즐기려는 사회초년생들의 첫 차로 인기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캐스퍼가 차박에 적합한 차라는 점에 많은 소비자들이 동의하지만 가격이 아쉽다는 평가도 여전히 많다. 사전예약 단계에서 나타난 관심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초기 판매에 성공했지만 이후 애매한 포지셔닝과 가격정책 탓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역사속으로 사라진 차도 있다.

대표적 사례는 현대차의 아슬란이다.

현대차는 2014년 10월 말에 플라그십(기함) 세단으로 아슬란을 내놨다. 아슬란의 차급은 준대형이었는데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의 라인업을 메우는 역할을 맡았다.

아슬란은 출시 초기만 일정 수준의 성과를 보였다. 아슬란은 2015년 1~5월에 모두 4459대 판매됐는데 이는 경쟁차량인 르노삼성차의 SM7(1744대), 한국GM의 알페온(1698대)보다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슬란의 신차 출시효과는 반 년이 전부였다. 아슬란 월별 판매량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급기야 한 달에 수십 대 판매되는 등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었다.

현대차는 결국 아슬란 출시 3년 2개월 만인 2017년 12월에 아슬란을 단종했다. 아슬란은 현대차가 생산한 차량 가운데 가장 ‘단명’한 차량으로 남았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