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0-06-12 14: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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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는 데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어 인력을 영입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이 최근 중국 기업에 영입되면서 한국 반도체 인력에게 중국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반도체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12일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외부에서 반도체 기술과 장비를 들이는 길이 막혔다”며 “중국이 반도체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재를 영입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2015년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공표하며 반도체 등 주요 부품을 국산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 제조 2025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는 것을 뼈대로 한다.
중국의 전략에 미국 정부에서는 국가안보와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 등을 고려해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2018년 들어 중국과 무역갈등이 깊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중국 반도체기업들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제재는 주로 중국에 외부 반도체 기술과 장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2018년 10월 중국 D램업체 푸젠진화반도체를 미국 수출입 금지명단에 올렸다.
푸젠진화반도체가 미국 국방부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마이크론의 기술을 도용한 혐의를 받는 만큼 국가안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조치로 푸젠진화반도체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미국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수입할 수 없게 됐다.
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 SMIC가 네덜란드기업 ASML로부터 극자외선(EUV) 공정용 장비를 수입하려 시도했던 일도 미국 정부에 의해 차단됐다.
극자외선 공정은 5나노급 이하 미세공정으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로 꼽히는 만큼 미국의 개입으로 SMIC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중국 최대 IT기업 가운데 하나인 화웨이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제재 대상이다.
화웨이는 2019년 5월 보안성 논란으로 미국기업과 거래가 금지됐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올해 새로운 제재안을 내놓으면서 자체 개발한 반도체를 대만 TSMC 등 외부 파운드리기업에서 위탁생산하는 일조차 어렵게 됐다.
반도체업계가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조치는 중국의 반도체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금융기관 크레디트스위스 조사결과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기업 40%가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등 미국기업의 장비를 사용한다.
또 케이던스, 시놉시스 등 미국 기업의 소프트웨어 사용률은 85%에 이른다. 극자외선 공정용 장비를 봐도 ASML이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어 다른 곳에서 구할 길이 없다.
미국의 제재가 이어지면 중국이 야심차게 내세운 중국 제조 2025 전략이 성공하기 어렵다. 시장 조사기관 IC인사이츠는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2024년에도 20.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당초 목표치인 70%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결국 중국 기업들은 외부에서 장비와 기술을 도입하는 데 제동이 걸린 만큼 핵심 기술을 갖춘 해외인재를 영입하는 쪽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전자 등 발전된 기술을 보유한 한국 반도체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이 최근 중국기업 ‘에스윈과기그룹’에 합류하며 이런 인재 영입에 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에스원과기그룹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에스윈전산과기그룹’ 등 전자계열사를 산하에 두고 있다. 에스윈전산과기그룹은 올레드(OLED, 유기발광 다이오드)패널용 디스플레이 구동칩(DDIC) 등을 개발한다.
장 전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LCD사업부장, 중국삼성 사장 등으로 일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왕둥성 전 BOE 회장과 인연을 맺어 왕 전 회장이 에스윈과기그룹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영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장 사장으로부터 핵심 기술이 유출될 염려는 거의 없다고 바라보는 것으로 파악된다. 장 사장이 디스플레이 전문가로 꼽히지만 만 65세로 실무현장을 오래 전에 떠났기 때문이다.
장 사장도 이날 한국경제와 인터뷰를 통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나온 지 30년이 지났고 LCD사업부장을 맡은 것도 10년 전 일”이라며 “무슨 기술을 유출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의 장 사장 영입이 한국 현직 기술자들에게 중국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에 관해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장 사장은 에스윈과기그룹에서 요직이라고 할 수 있는 부총경리(부회장)를 맡았다. 그동안 중국기업들이 ‘토사구팽’ 식으로 핵심 기술자들의 기술만 확보한 뒤 내치던 것과 다르게 외부 인재에게도 높은 대우를 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양팽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전문인력의 유출 우려와 관련해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중국기업의 인재 영입을 막기는 사실 불가능하다”며 “애국심에 호소하기보다는 중국 기업보다 더 나은 연봉을 제시하는 등 기술자에 관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