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는데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비로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대국민담화가 아닌 국무회의 자리에서 모두발언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런 애매한 형식과 모호한 발언 탓에 성난 여론을 충분히 가라앉히기에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인 "박 대통령의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고 반발했다.
▲ 박근혜 대통령 |
박 대통령은 29일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로 희생된 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가족 친지 친구를 잃은 슬픔과 고통을 겪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드린다”며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에 대해 전담부처를 설치해 통합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실에서 직접 관장하면서 부처간 업무를 총괄지휘조정하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참석자들에게 “과거의 모든 관행과 관습을 고쳐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사력을 다해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이 여러 곳에서 나온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 희생자 유가족 대책회의는 이날 "5천만 국민이 있는데 박 대통령에게 국민은 국무위원뿐인가"라며 "비공개 사과는 사과도 아니다"며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사과발언이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이뤄진 데 대한 비판인 셈이다.
유가족 대책회의는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와스타디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 대통령은 분향소에서도 그냥 광고 찍으러 온 것 같았다"며 "실천과 실행도 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며 말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국민들 앞이 아닌 국무회의에서 사죄의 마음을 표하는 것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회의장에서 한 진심을 느낄 수 없는 말 한마디를 국민은 결코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은 “오늘 국민들 모두는 사과 아닌 사과를 받아야 했다"며 "시기도, 형식도, 내용도 모두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반면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국민들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짧게 언급해 비판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추후 대국민 입장발표를 검토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 국무회의 자리에서 사과 말씀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사고가) 수습되고 재발방지책이 마련되면 사과를 포함해 대국민입장 발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서 박 대통령의 사과 발언은 다소 늦었고 사과의 내용이나 형식에 크게 미흡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발생 8일만에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때 사흘만에 “국민 여러분께 이 사건으로 많은 심려를 끼쳐드린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씨랜드 화재사건이 발생하자 다음날 합동분향소를 찾아 “대통령으로서 미안하다”고 유족들에게 직접 사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 발생시 당선인 신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사건발생 사흘만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한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을 붙잡고 애통한 마음을 호소했다. 박 대통령도 유가족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조의록에 “갑작스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삼가 고개숙여 명복을 빈다”고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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