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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금융 지배구조 정리착수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2014-04-23 19: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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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금융 지배구조 정리착수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2년 11월 30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이건희 삼성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그룹이 다시 움직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96일 만에 출근한 날 삼성생명에 대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삼성 비금융 계열사들은 보유하던 삼성생명 지분을 23일 일제히 처분했다. 삼성생명은 이날 삼성카드의 지분을 사들였다.


재계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재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넘겨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두 가지 약점을 안고 있다. 첫 번째가 순환출자 구조다. 두 번째는 금산분리에 대한 요구다. 이 두 가지 과제를 이재용 체제에 넘겨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삼성그룹 내부의 합의라고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에 진행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삼성생명 지분정리는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


◆ 삼성생명 지분정리로 비금융 계열사와 순환출자 해소


삼성전기와 삼성정밀화학, 삼성SDS, 제일기획 등 삼성 비금융 계열사들은 23일 주식시장이 열리기 전 삼성생명 지분을 전부 처분했다.


이날 4개 비금융 계열사들이 시간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한 삼성생명 지분은 1.64%로 총 328만4940주다. 삼성전기(0.6%, 120만6380주)가 가장 많은 지분을 팔았고 삼성정밀화학(0.47%, 94만4090주)과 삼성SDS(0.35%, 70만8910주), 제일기획(0.21%, 42만5560주)이 뒤를 이었다. 주당 매각가격은 22일 삼성생명 종가인 9만8900원보다 4% 할인된 가격인 9만4944원으로 결정됐다. 전체 매각 금액은 총 3118억여 원으로 씨티글로벌마켓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CS)가 매각을 맡았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업자금 조달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4개 회사 모두 1%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지분을 처분하더라도 삼성생명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4개 계열사들이 지분매각으로 확보하게 된 현금은 삼성전기가 1193억 원, 삼성정밀화학이 934억 원, 삼성SDS 701억 원, 제일기획 421억 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매각으로 삼성생명이 삼성그룹 비금융 계열사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분석한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삼성의 지분정리는 그동안 비판받았던 순환출자 구조와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삼성전자→비금융 계열사→삼성생명의 순환출자 구조로 그룹을 지배한다. 그런데 비금융 계열사들이 이번에 지분을 정리하면서 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어지게 됐다.


매각 후 삼성생명의 주요주주는 이건희 회장(20.76%)과 삼성에버랜드(19.34%), 삼성문화재단(4.68%), 삼성공익재단(4.68%)으로 좁혀졌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삼성에버랜드만이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함에 따라 에버랜드→삼성생명의 지배구조가 단순화했다.


◆ 삼성생명 중심의 수직계열화에 한 걸음


또 주목할 점은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삼성그룹 금융부문의 수직계열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 전량을 넘겨받았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29만8377주를 주당 23만8500원의 가격으로 총 711억여 원에 사들였다. 매입 후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은 총 520만4095주로 보통주 기준 지분율이 10.36%에서 10.98%로 높아졌다. 이로써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와 삼성카드를 거느리는 형태로 지배구조 단순화가 이뤄졌다.


삼성생명을 삼성그룹 금융부문의 지주사격으로 세우려는 작업은 그동안 꾸준히 이뤄졌다. 삼성생명은 지난해 12월 삼성전기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 전량 739만6968주(6.38%)를 취득해 지분율을 28.02%에서 34.41%로 끌어올렸다. 삼성카드 최대주주인 삼성전자와 불과 0.04% 차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삼성카드의 지분매각은 삼성생명이 금융 계열사를 단독으로 지배하는 지주사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생명이 금융 계열사 간 순환출자구조를 끊으면서 화재와 카드, 증권 등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모든 금융 계열사들을 단독으로 지배하려면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 지분 37.45%를 정리해야 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2일 종가 기준으로 무려 1조5천억 원에 이른다. 또 삼성화재와 삼성물산이 삼성증권 지분을 각각 8.02%와 0.26%씩 보유하고 있어 이 부분도 앞으로 정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 여전히 숙제로 남은 이건희의 4조 원과 삼성생명의 9조 원


삼성생명이 비금융 계열사와 연결고리를 끊고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이재용 체제로 이행을 위한 이건희 회장의 사전조처로 보인다. 순환출자라는 경영 리스크를 끊어 이 리스크를 이재용 부회장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금산분리를 이행하라는 정부와 사회의 압박을 강하게 받아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금융 계열사 지분 정리는 삼성그룹이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해결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태현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이번 삼성생명 지분 매각과 삼성화재 지분 매입으로 삼성그룹의 금산분리와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건희, 삼성금융 지배구조 정리착수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뉴시스>

하지만 여전히 삼성생명을 둘러싼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바로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과 삼성생명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이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다. 결국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해도 이 두 가지 지분정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지금과 똑같은 경영 리스크를 안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가치는 22일 종가 기준으로 4조1천억 원을 조금 넘는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를 물려받을 경우 2조 원 가량의 세금을 내야 한다. 액수가 크지만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0.57%만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생명 지분을 상속받아야만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21%를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다.


다만 금산분리 압박이 거세질 경우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한다는 시나리오는 큰 고비를 맞게 된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4일 제출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대표적 사례다.


이 의원은 보험회사도 다른 금융회사처럼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금산분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지난해 기준으로 총자산의 3%인 약 5조8천억 원 한도 내에서만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현재 14조6천억 원이나 되는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거의 9조 원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야 한다. 이 경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2.9%대로 떨어지게 된다.


삼성그룹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금산분리 압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결국 삼성생명을 둘러싼 상속과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 상속을 장담하기 어렵다.


◆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은 가능할까?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에 대한 정리작업이 진행되면서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될 것인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정부가 최근 중간금융지주사 도입을 추진함에 따라 삼성그룹이 삼성생명 지분 매각없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중간금융지주사 제도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달성을 위한 금산분리 방안과 관련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중간금융지주사 설치 의무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지난 3월6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일반지주회사의 중간금융지주사 설치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된 법률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정부가 내놓은 방안에 따르면 일반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에버랜드가 지주사로 전환해도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보험사를 포함해 금융사나 보험사를 3개 이상 두거나 금융 계열사 자산이 20조 이상일 경우 중간금융지주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중간금융지주사 제도를 통해 비금융 회사와 금융회사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 지배구조를 인정하는 동시에 지주사 전환을 압박하겠다는 입장이다.


증권 전문가들은 삼성그룹이 지주사 전환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사로 만들기 위해 이번에 지분 정리를 했다고 분석한다. 이태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이 일본 소니그룹처럼 금융과 비금융으로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계열사 간 지분 매각과 교환이 추가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비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금융 계열사 지분 정리를 마무리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을 정리하는 데만 1조5천억 원 이상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도 모두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7.21%)와 삼성물산(4.79%), 호텔신라(7.3%), 삼성중공업(3.38%) 등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그룹 전체 경영권과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중간금융지주사 전환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게다가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가 되려면 상장된 금융 계열사 지분율을 30%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이 조건을 충족하는 금융 계열사는 삼성카드뿐이다. 만약 지분을 맞추지 못한다면 아예 매각해야 하기 때문에 삼성그룹이 지주사 전환과 중간금융지주사 설치에 큰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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