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잃게 된다면 공산품과 서비스 분야의 영향은 거의 없는 반면 농산물 분야에서는 타격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른 개발도상국 지위를 앞으로 지킬 수 있을지 불확실해지고 있다.
 
한국 'WTO 개발도상국' 제외 가능성, 공산품은 '무풍' 농산물은 '태풍'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발도상국의 우대를 줄이거나 분류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세계무역기구에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는 어떤 나라가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으로 정의한다면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협약이행 기간을 연장하거나 농업 보조금에 느슨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다. 특별품목의 관세율을 덜 깎거나 관세 감축 자체를 면제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부유한 국가가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고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미국의 무역분쟁 상대이자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지만 한국도 불똥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미국은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나라의 기준 4개를 제시했는데 한국은 모두 해당된다. 이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또는 가입절차를 진행 중인 국가, 주요20개국(G20), 세계은행에서 고소득국가로 분류한 나라, 세계 무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다.

다만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할 때 공산품과 서비스 분야에서는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는 나라가 줄어든다면 우리나라가 이 분야들에서는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설 여지도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도하개발어젠다(DDA) 무역협상에서 공산품 분야의 개발도상국 관세장벽을 낮추는 데 힘을 실었던 전례도 있다. 도하개발어젠다는 세계무역기구에서 다자무역 자유화를 위해 2001년부터 추진해 왔지만 회원국가들의 의견차이로 현재는 잠정 중단된 무역협상을 말한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산품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는 나라가 확대되는 쪽은 우리나라의 수출시장 확보에 도움이 안 된다”며 “공산품시장 개방에 관련된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유지하는 나라 수가 많은 건 우리나라의 이익과 반대되는 방향”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잃는다면 농업 분야에서 큰 타격을 피하기 힘들다. 핵심 농산물의 특별품목 지정이 해제되면서 수입 관세율도 대폭 깎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으로서 쌀과 관련된 품목 16개를 특별품목으로 지정하면 현재 관세율 513%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이 품목들이 일반품목으로 바뀌면서 쌀 관세율이 154%까지 떨어질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에서 허용하는 농업 분야 감축대상 보조금(AMS)의 지급상한액도 개발도상국일 때는 1조430억 원인 반면 선진국으로 분류되면 8195억 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세계무역기구가 미국의 요구대로 개발도상국의 결정 방법을 바꾸기는 당장 쉽지 않아 보인다. 관련 규정을 바꾸려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 164곳의 전원 동의를 얻어야 하는 데다 중국 등의 반발도 만만찮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에서 향후 90일 안에 개발도상국 분류 문제에서 눈에 띄는 진전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미국만이라도 일정 경제 규모 이상인 나라를 개발도상국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태도도 지키고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개발도상국 지위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하기 힘들다”며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 지위를 지키기 쉽지 않은 만큼 정부도 통상 대응전략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