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만도 분할로 한라 지원 돌파구 찾다  
▲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가 분할된다. 제조사업 부문을 떼내 신설회사를 설립하고 기존회사는 투자사업 부문을 담당하며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이 기업분할을 놓고 만도의 현금으로 한라의 부실을 메우기 위한 조처라는 부정적 평가와 만도의 가치가 높아지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만도는 지난 7일 인적분할방식으로 기업을 나누기로 결정했다. 제조부문을 떼내 신설회사를 만들어 만도로 회사이름을 정하고, 기존회사는 투자사업을 담당하며 지주역할을 하는데 한라홀딩스로 이름붙이기로 했다.

이번 분할은 기존회사의 주주들에게 신설법인의 주식을 나눠주는 형식이다. 만도와 한라홀딩스의 분할비율은 0.52대 0.48이다. 기존 만도 주주들은 주식 1주당 만도 주식 0.52주와 한라홀딩스 주식 0.48주를 나눠받게 된다. 지분율은 변동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 만도의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의 지분 비율 7.71%는 한라홀딩스와 만도에서 동일하게 7.71%를 유지하게 된다.

만도는 “각 사업부문별 특성에 맞는 전문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며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현재 한라그룹은 ‘만도→한라마이스터→한라→만도’의 순환 출자 구도를 이루고 있다. 기업 분할 후 한라홀딩스가 지주회사가 되려면 한라가 보유한 만도의 지분 17.29%를 사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만도를 한라홀딩스 밑에 둬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한라홀딩스는 만도, 한라, 한라마이스터, 한라스텍폴, 만도헬라를 거느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라그룹 관계자는 "한라홀딩스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교환해 장기적으로 한라홀딩스를 지주회사로 만들어 다른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을 사들이는데 부족한 자금은 한라홀딩스가 보유하고 있는 1조 원의 이익잉여금(분할 전 만도 시절에 쌓아두었던 금액)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번 만도의 분할은 한라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만도는 꾸준히 성장해 재작년부터 매출 3조 원을 넘는 등 흑자경영을 해오고 있다. 반면 한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몇 년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만도의 돈이 꾸준히 한라로 흘러들어갔다.


한라는 2012년 1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730억 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했는데, 이 중 200억 원어치를 만도의 자회사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이어 지난해 4월에도 3385억 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해 역시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사실상 만도 자회사를 통해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라는 여전히 실적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만도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만도 주총에서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만도의 지분 13.4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열어 "만도가 100%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한라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부실 모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며 이는 만도의 장기 기업 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분할로 지주회사를 통해 과거처럼 만도의 돈이 한라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 한라그룹 측은 "만도나 한라홀딩스를 통해 한라를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투자증권의 한 연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지분 정리가 이뤄지더라도 만도가 한라에 추가 자금지원을 할 가능성이 낮아져 주가 상승에 기여할 전망"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하이투자증권의 다른 연구원은 “이번 분할로 만도가 한라의 건설 실적 부진을 커버하는 지원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이날 증시에서 만도 주가는 전날보다 14.81%(2만원) 하락한 11만5천 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개장과 동시에 폭락하기 시작한 만도 주가는 장이 끝날 때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하한가로 끝났다.


만도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만도의 경쟁력이 약화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분할 전 157%인 만도의 부채비율은 분할 뒤 279%로 높아진다. 또 현금자산은 5천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줄고, 1조235억원에 이르는 이익잉여금도 모두 사라진다. 빚만 늘어나고 통장잔고는 비는 셈이다. 

대신 한라홀딩스는 4500억 원의 현금자산과 1조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넘겨받았다.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또 주요 자회사인 만도헬라가 한라홀딩스 소속으로 결정된 것도 만도에겐 악재로 작용했다.

한라는 지난해 428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만 약 3300억 원이다.

만도의 분리는 오는 7월 말 주주총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면 9월에 분할이 이뤄진다. 이어 10월 초에 한라홀딩스 주식을 변경상장하고 신설회사 만도의 주식은 재상장하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한라그룹은 내년 5월까지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일 한라그룹 본사에 조사관들을 보내 한라건설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만도의 부당지원 행위가 있었는를 조사했다.

한라건설은 지난해 4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당시 계열사인 한라마이스터는 한라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 378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는데 만도가 이를 모두 인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5월 "이는 공정거래법상 계열사간 부당지원행위에 해당된다"며 한라그룹을 공정위에 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