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관 '기관투자자 기후평가 기준' 상향, ‘선언’뿐인 국민연금 갈 길 멀어

▲ '과학 목표 기반 탄소감축협의체(SBTi)' 신평가 기준 발표 페이지. < SBTi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적으로 공신력 높은 국제평가기관이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후대응 평가 기준을 상향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단순한 선언 만으로는 기후대응 노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됐다.

우리나라 대표적 투자기관인 국민연금은 3년 전에 ‘탈석탄 선언’을 했으나 실천계획 수립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기후대응과 관련해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각) '과학 목표 기반 탄소감축협의체(SBTi)'는 금융기관과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기후정책 평가 기준을 상향한 ‘재무기관 단기 목표 평가기준(FINTC) 2.0’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SBTi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탄소공개프로젝트(CDP), 세계자연기금(WWF) 등이 협업해 만든 글로벌 협의체로 세계적 공신력을 가진 기후대응 평가기관이다.

기존에는 금융기관이나 기관투자자가 기후대응에 관한 SBTi 인증을 받으려면 화석연료 분야 투자 중단을 선언하고 이와 관련한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실천 수단을 제시해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 기한과 화석연료 투자 중단 계획 수립 요구사항 등이 변경됐다.

SBTi 인증을 받으려면 기관투자자들은 투자 포트폴리오 기업 내에서 발생하는 스코프 1(직접 배출)과 스코프 2(간접 배출) 감축목표를 SBTi가 설정한 기한 내에 파리협정에 부합하도록 개편해야 한다. 파리협정 목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세계 기온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하기로 약속한 것을 말한다.

SBTi는 기존에 개편 기한을 5~15년으로 부여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판에서 5~10년으로 단축했다. 기한 설정을 애매하게 설명하고 있던 스코프 3(공급망 내 배출) 규정과 관련해서도 감축 기한을 명확히 밝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또 올해 11월부터 SBTi 인증을 받은 모든 기관투자자들은 화석연료 프로젝트 및 화석연료 기업을 향한 투자 및 지지를 중단하는 구체적 계획안을 수립해 제출해야 한다. 사실상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영향이 큰 기업 또는 프로젝트를 향한 투자는 모두 중단하라고 요구한 셈이다.

SBTi가 이번에 목표를 상향했다는 것은 이 기관의 국제적 위상을 고려할 때 앞으로는 단순히 탈석탄 선언 등 기후 대응책 발표 자체만으로는 기관투자자의 노력을 인정받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대표적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도 2021년 SBTi 1.5도 시나리오 분석 보고서에서 기후대응 노력에 관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SBTi는 2019년 국민연금 투자포트폴리오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3646만 톤으로 산정하고 이를 2035년까지 62.7%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같은 해 탈석탄 선언을 냈으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 실천은 없어 국내외 기후단체들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국제기관 '기관투자자 기후평가 기준' 상향, ‘선언’뿐인 국민연금 갈 길 멀어

▲ 28일 국회 앞에서 열린 국민연금 규탄 공동성명문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기후솔루션>

지난 28일에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와 기후솔루션 등 국내 기후단체들이 국회의원 당선자들과 함께 국민연금의 기후문제와 관련한 무대응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국민연금을 향해 "석탄발전 투자는 좌초자산 가능성이 높은 재무적으로 위험한 투자이며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반환경적 투자이기도 하다"며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이런 투자를 연장시키고 있는 국민연금의 투자 행태는 무책임하고 재무적으로도 우둔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이 탈석탄 선언 이후로 오히려 기후 대응 분야에서는 역행했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 비영리단체 우르게발트 등 25개 비영리단체가 공동 분석한 결과 국민연금 석탄 투자액은 2021년 탈석탄 선언 이후 1년 만에 약 1조6700억 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인공지능 기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기관 후즈굿과 협업해 국민연금의 금융배출량이 여전히 2710만 톤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SBTi가 2035년까지 달성해야 한다고 목표로 지정한 배출량이 약 1200만 톤인데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기후변화는 국민연금 기금 수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장기 이슈로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의 투자시계열과도 부합한다”며 “국민연금의 탄소중립은 그런 점에서 수탁자 책무인 동시에 탈탄소 등 지속 가능한 경제로 자본시장을 대전환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