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선업 재건 한국에 '이중 공세', 자국으로 발주 돌리고 미국과 밀월 강화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0월28일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 기지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함께 방문해 조지워싱턴 항공모함에서 복무하는 장병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일본이 대규모 정부 지원과 대미 관계 강화로 조선산업 재건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조선 강국' 한국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인다. 

일본 해운사도 정부 기조에 맞춰 한국에 맡겼던 선박 수주를 일본 조선소로 돌리려 할 뿐 아니라 미일 조선업 협력을 강화하면서 한국에 ‘이중 공세’를 펼칠 태세다.

27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일본의 3대 해운 그룹은 자국 조선사와 협업해 차세대 선박 개발에 나선다.

일본우선, 상선미쓰이, 가와사키기선 등 일본 해운 3사는 조선사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이마바리조선이 합작해 세운 법인 마일스(MILES)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다.

이번 투자로 마일즈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메탄올,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연료로 추진하는 선박을 개발하겠다는 목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일본 해운사가 그동안 한국이나 중국 등 다른 국가에 발주했던 선박을 자국 기업으로 돌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본우선은 회계연도 2028(2027년 4월~2028년 3월)까지 LNG 운반선을 현재보다 40% 늘릴 예정인데 이를 마일스에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

닛케이아시아는 “대부분 선박을 일본과 중국에서 발주하던 일본우선이 일부 주문을 자국으로 돌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조선업 재건의 일환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21일 발표한 경기 부양책을 통해 “2035년 선박 건조 물량을 2024년의 두 배로 늘리는 작업에 1조 엔(약 9조3700억 원)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1970~1980년대 세계 조선시장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점유율이 높았다. 하지만 이후 한국과 중국에 점유율 내주며 쪼그라들었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10월 표준화물선환산톤수(CGT) 기준 세계 선박 신규 수주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6.6%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한국과 중국의 점유율은 21%와 59%를 기록했다. 일본이 한국과 당장 점유율을 좁히기는 어렵겠지만 수주를 철회하거나 추가하지 않는 식으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일본 조선업 재건 한국에 '이중 공세', 자국으로 발주 돌리고 미국과 밀월 강화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에서 미 해군의 미겔 키스함이 점검을 받고 있다. <미 해군 인도태평양사령부>


이에 정부 차원에서 지원책을 내놨는데 해운사가 한국에서 발주했던 선박을 자국 조선소로 돌릴 가능성도 나온 셈이다. 

이와 별도로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조선업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와 협업을 위한 경제 안보 차원에서 바라보며 밀월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앞서 미·일 양국 정부는 10월28일 조선분야 협력각서(MOC)를 체결하고 양국 조선능력 확대와 인력 양성 및 기술 개발 등에 협업하기로 약속했다. 양국이 선박을 공동으로 설계하거나 일본의 대미 조선업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도 각서에 포함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국무장관은 협력각서를 체결한 뒤 “훌륭한 동맹인 일본과 미국 조선업 재건에 협력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일명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이름을 붙인 프로젝트를 미국에 제안하고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지난해 12월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를 인수하고 올해 8월 50억 달러(약 7조3280억 원)를 추가 투자한다고 발표한 일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화오션과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은 마스가에 기반해 미국 선박 건조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수주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일본이 미국과 이른바 ‘밀월 관계’를 강화하면 한국에 돌아올 일감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4월15일 미 해군의 루이스 B. 풀러급 원정이동기지선 점검을 마쳤다. 

미국은 안보상 해외 조선소에서 군함을 수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는데 예외 사유에 해당해 일본이 사업을 맡았다. 

미 해운전문지 마리타임이그제큐티브는 이번 일을 두고 “일본이 미 해군 함정 점검사업을 따낸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했다.

요컨대 일본 민·관이 모두 조선업 재건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한국 조선사와 수주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닛케이아시아는 “일본의 해운과 조선 업계는 한국 경쟁사보다 생산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세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