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APEC 앞두고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통상전쟁 '뉴 노멀'로 자리잡나

▲ 경북 경주 시내에 걸린 APEC 현수막 옆에서 9월25일 방문객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당국이 APEC 정상회담을 20일가량 앞둔 시점에 희토류와 관련 기술의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는 조치를 내놓으면서 미중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중국은 관세를 비롯한 미중간 주요 통상 쟁점이 등장할 때마다 희토류 수출통제 카드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도 희토류 영향력을 앞세워 '위세'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일(현지시각)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 카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중국산 전략 광물이 들어가는 제품을 해외에서 생산할 때는 해당 전략 광물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해외 희토류 물자 수출 통제 결정’을 발표했다. 여기에 중국은 홀뮴과 에르븀 등 희토류 5종을 수출통제 목록에 추가로 올렸다. 

이번 결정에 따라 중국산 희토류가 제품 가치에 0.1% 이상 비중인 경우 해당 제품을 수출하는 업체는 당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더해 중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와 장비에 쓰는 희토류 수출은 따로 심사하기로 했다. 군사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연구개발용 희토류도 별도로 심사해 수출을 막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 의견을 인용해 “기술 기업이 자사 반도체나 제조 장비에 중국산 희토류 함량이 0.1% 미만임을 입증하는 것은 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이렇게 강력한 희토류 수출 통제책을 발표한 배경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과 협상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앞둔 29일 방한해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9월19일 시 주석과 나눈 전화 통화 이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공식 계정에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APEC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관세와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 대만 이슈 등 이야기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국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더욱 강력한 희토류 수출 통제를 내놓았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씽크탱크 실버라도 정책 액셀러레이터의 공동 설립자 드미트리 알페로비치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희토류 수출통제는 미국을 염두한 협박 전술”이라며 “경제적 핵전쟁과 같다”고 평가했다. 
 
중국 APEC 앞두고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통상전쟁 '뉴 노멀'로 자리잡나

▲ 2010년 10월31일 중국 장쑤성 롄윈강 항구에서 작업자들이 수출용 희토류가 함유된 토양을 지게차로 운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로 미국과 협상에서 계속해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생산과 제련 공정에서 9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해 협상력을 높이기 용이하다. 

희토류는 자성을 비롯한 특성으로 전기차 모터와 풍력발전,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과 군사 무기에 필수 소재로 중요도가 높다. 

미국이 전임 바이든 정부에서부터 첨단 제조업 생산 거점을 영토 안으로 들이는 일명 ‘리쇼어링’ 정책을 펴다 보니 중국의 희토류 카드에 오히려 더 취약해졌다.

실제 올해 4월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항해 사마륨과 디스프로슘 등 희토류 7종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한 이후 트럼프 정부는 대중 관세율을 낮추겠다는 뜻을 내놨다. 

더구나 중국은 국가 안보를 내세워 희토류 수출통제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법망도 정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이런 대응이 계속되면서 중국발 희토류 수출통제가 글로벌 무역 환경에 일상이 되는 이른바 ‘뉴 노멀’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CNBC는 9일 논평을 통해 “수출통제법은 중국의 핵심 경제적 수단으로 부상했다”며 “법망이 복잡해 중국 정부가 원하는 시점에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중국이 세계의 이목이 쏠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번에 전략적으로 희토류 수출통제를 강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중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경주 APEC에서 미중 정상회담 자체가 불발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닛케이아시아는 10일 APEC 회담 전망을 다룬 기사에서 “미·중 사이에 미해결 문제를 둘러싼 합의 전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트럼프와 시진핑이 공식 회담을 갖지 않을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