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I 반도체는 미국 아닌 '중국 협상카드', 정상회담 앞두고 규제 강화

▲ 중국 정부가 미국과 정상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및 희토류 수출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정부와 무역 논의에서 협상카드를 쥐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이 주요 항구에 세관 인력을 투입해 점검을 강화하며 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비롯한 고성능 반도체 수입 규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엔비디아 반도체 수출입 통제가 그동안 중국을 향한 미국의 협상카드로 활용되어 왔지만 이제는 중국이 주도권을 쥐며 상황이 바뀌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중국 당국이 현지 기업들의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의존을 낮추려는 목적으로 수입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복수의 관계자 말을 인용해 지난 몇 주에 걸쳐 중국 주요 항구에 세관 인력이 투입돼 반도체 반입과 관련한 엄격한 점검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중국 기업들이 정부 지침에 따라 엔비디아 반도체 구매를 중단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엔비디아 H20과 RTX프로6000D 등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된 제품이 주요 대상이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 당국의 검사 대상이 모든 고사양 반도체 제품으로 확대되며 미국의 수출 규제를 위반한 첨단 반도체 수입 규제도 강화됐다고 전했다.

중국 세관당국은 그동안 미국의 반도체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거의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자국 IT기업의 기술 자급체제 구축을 강화하고 인공지능 경쟁에서 미국을 추월하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임박한 시점에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10월 말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미국과 중국의 상호관세 및 수출입 규제와 관련해 폭넓은 내용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는 최근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희토류 공급망을 옥죄는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하며 정상회담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트럼프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 AI 반도체는 미국 아닌 '중국 협상카드', 정상회담 앞두고 규제 강화

▲ 엔비디아 인공지능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 참고용 이미지.

미국이 첨단 산업과 군사무기에 핵심인 희토류 수입을 중국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더 나아가 중국이 엔비디아 반도체 수입 규제를 강화한 것도 미국 기업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적극 앞세워 무기로 삼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는 그동안 미국 정부의 주요 대중국 협상카드로 활용되어 왔다.

중국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위해 엔비디아 반도체 공급에 크게 의존했던 만큼 미국이 수출을 통제하면 중국은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출범 뒤 중국에서 엔비디아 기술에 의존을 낮출 수 있는 신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필요성이 낮아져 상황이 뒤바뀌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반도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적극 앞세우는 반면 미국은 엔비디아에 미칠 타격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만약 중국의 인공지능 모델 또는 반도체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한다면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기업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 IT기업들이 엔비디아 반도체에 계속 의존하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중국은 수입 규제를 강화해 이를 방어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고위 관계자들은 자국 기업들의 기술이 이미 엔비디아를 대체할 만한 역량을 갖춰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동안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려 지원을 집중해 온 결과”라고 전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에서 엔비디아 반도체 규제를 무기로 앞세울 수 있는 쪽은 미국이 아닌 중국 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인공지능 반도체와 희토류를 모두 협상카드로 내세워 미국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무역 논의를 이끌어갈 여지가 충분하다.

결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정상회담 이후 대중국 수입관세율 및 기준을 완화하고 성능이 더 높은 인공지능 반도체 중국 수출을 허용하는 등 정책 변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떠오른다.

다만 닛케이아시아는 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무역 관계나 수출규제 등 상세한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이를 다음으로 미룰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