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맏딸인 정지이 전무는 핵심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아닌, 현대무벡스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이 중 맏딸인 정지이 전무가 유력한 승계 후보자로 꼽히고 있다.
범현대가가 전통적으로 아들 승계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현 회장의 아들인 정영선 이사는 현대투자파트너스에서 근무 중인 것 외에는 두드러진 경력이 없다.
반면 정지이 전무는 그룹 계열사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아 왔다.
정 전무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외국계 광고회사를 거쳐 2004년 현대상선(현 HMM)에 입사했다. 현대상선에서 기획지원본부 부본부장(전무), 사장실장(전무), 글로벌경영실장(전무)을 지냈다. 그러면서 그룹의 IT 계열사인 현대유엔아이 전무도 겸임했다.
그런데 정 전무는 현재 그룹의 핵심 계열사이자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에서는 일한 적이 없다.
현대그룹은 그룹 최상단의 지배회사인 현대홀딩스컴퍼니에서 현대엘리베이터로, 현대엘리베이터에서 현대무벡스 등 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정 전무는 2016년 현대상선이 그룹에서 분리된 후 현대유엔아이에서 일했고, 2018년 현대유엔아이와 현대엘리베이터 물류자동화 사업부문이 합병돼 현대무벡스가 설립된 이후에도 계속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에 따라 정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에 적을 두지 않는 이유와 향후 현대엘리베이터로 옮길 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재계에서 유력 승계 후보자들은 지분 승계와 지배력 확장을 목적으로 그룹의 핵심 계열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씨저널과 통화에서 “정지이 전무가 소속 회사를 옮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정지이가 현대엘리베이터 가지 않는 이유
현대무벡스는 물류자동화 사업, 승강장 플랫폼스크린도어(PSD) 시스템 사업, IT 서비스 등 크게 세 가지 사업부문을 갖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지분 55.9%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다. 정지이 전무도 4.0%를 갖고 있다.
정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가 아닌 현대무벡스에서 계속 일하는 것을 두고 현 회장이 정 전무에게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인 스마트물류, IT 솔루션 등 신사업을 맡긴 것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정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정 전무를 현대엘리베이터의 내우외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현 회장의 선택일 수도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오랜 기간 스위스 엘리베이터 업체인 쉰들러와 경영권 분쟁을 겪어 왔고, 2023년에는 KCGI자산운용 등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요컨대 정 전무는 현대무벡스에서 신사업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동시에, 외부 간섭을 최소화한 채 안정적으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환경을 보장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향후 현대엘리베이터의 상황이 안정되면 정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최근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가 지분을 팔며 엑시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도 멈춘 상태다.
다만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19.26%)인 현대홀딩스컴퍼니의 경우 사모펀드인 H&Q코리아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며 발행한 메자닌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룹 내부에서는 조기 상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정지이 전무는 현정은 회장의 지분을 승계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현재 정 전무는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7.89%를 갖고 있는데, 현대홀딩스컴퍼니 최대주주인 현 회장의 지분율은 61.63%다. 이어 H&Q 29.66%, 정영선 이사 0.58%, 정영이 상무 0.24% 순이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