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규제가 중국 메모리 자급체제 앞당길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중고'

▲ 미국 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겨냥한 기술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하며 현지 메모리 제조사들의 자급체제 구축을 자극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중고로 돌아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시됐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를 강화한 것은 현지 제조사들의 자급체제 구축을 앞당기는 역효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 투자에 차질이 불가피해진 데 이어 시장 경쟁도 한층 더 치열해지며 이중고를 겪게 될 가능성이 떠오른다.

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미국의 새 기술 규제가 중국 반도체 업계에 기회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 장비를 반입할 때 정식으로 개별 승인 절차를 밟도록 하는 규정을 시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해당 규제를 도입한 뒤에도 이를 유예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사실상의 면제권을 부여해 왔는데 앞으로는 불리한 대우를 받게 되는 셈이다.

미국 상무부는 이미 중국에 공장을 설립한 반도체 제조사의 운영은 허가하겠지만 증설 또는 공정 개선을 위한 추가 투자를 벌이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조치는 미국과 중국이 관세 인상 계획을 유예하는 데 합의한 뒤에도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투자기관 BBVA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억제하려는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이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양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특히 이번 규제는 중국이 전 세계에서 큰 생산 비중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 산업 분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로 메모리반도체 개발이 지연되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선두주자에 뒤처지고 있었다”며 “그러나 아직 추격은 끝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미국 규제가 중국 메모리 자급체제 앞당길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중고'

▲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메모리반도체 참고용 이미지.

BBVA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반입 제한이 결국 중국의 메모리 공급망 자급체제 구축을 더욱 강력하게 자극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메모리반도체 생산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만큼 현지 기업들이 자국 내 수요를 대체하는 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규제로 주요 생산거점인 중국에 투자를 지속하기 어려워져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중국 반도체 제조사들이 이를 계기로 추격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객 수요를 놓치며 이중으로 악영향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단기간에 생산 물량을 크게 늘려 공급 과잉을 이끌고 이를 통해 수익성보다 점유율 확대를 더 우선시하는 전략을 쓴다.

이는 자연히 메모리 업계 전반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 악영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엔비디아와 AMD 수출 규제에 맞서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 있다.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 중국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업체들이 현지 고객사들의 수요를 확보하며 급성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중국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이 인공지능 반도체에 필수로 쓰이는 첨단 제품의 자급체제 구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자연히 미국이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을 벌이며 시행한 여러 반도체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결과적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지속적 압박에 대응하는 현지 기업들의 노력에 따라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