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백브리핑] 한화-DL 폭로전과 여천NCC '묻지마 배당'의 흔적들

▲ 여천NCC가 부도 위기를 넘겼지만, 유동성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천NCC>

[비즈니스포스트] 한화그룹과 DL그룹이 합작사 여천NCC에 3천억 원을 대여하기로 하면서 부도 위기에 몰렸던 회사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석유화학업계 침체를 불러온 중국발 공급과잉 구조가 여전한데다 중동국가들이 건설중인 대규모 첨단설비가 가동을 앞두고 있어 유동성 위기 재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황 악화가 여천NCC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두 주주 회사(한화솔루션, DL케미칼)가 묻지마식 배당 빼가기로 회사 현금을 바닥내면서 재무 안정성이 무너진 것 또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2016년~2025년 상반기까지 여천NCC 손익계산서 상의 당기순이익, 현금흐름표 상의 영업활동현금흐름, 시설투자(CAPEX) 지출액, 배당 지출액, 기말(연말) 현금잔액 등을 정리한 다음의 표를 보자. 
 
[컴퍼니 백브리핑] 한화-DL 폭로전과 여천NCC '묻지마 배당'의 흔적들

2016년과 2017년에는 영업활동현금 창출액 내에서 설비투자와 배당지출이 있었다. 연말 현금잔고도 3400억 원~4100억 수준을 유지했다. 

2018년에는 시설투자(1061억 원)와 배당지급(8600억 원)에 모두 9661억 원, 즉 1조 원 가까운 현금이 소진됐다. 이는 당기의 영업활동현금흐름(4921억 원)을 크게 초과하는 수치다.

전년 당기순이익(7657억 원)의 100%가 넘는 금액이 배당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여천NCC는 전년으로부터 넘어온 현금을 모두 배당에 털어넣었다. 이 해의 연말 현금잔액은 132억 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2개년(2019년~2020년)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 순유입액보다 설비투자와 배당으로 지출된 금액이 더 큰 흐름을 보였다. 전년으로부터 넘어온 현금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수천억 원대 배당과 자본적 지출(설비투자)을 감당하려다보니 부족자금은 회사채 발행 등으로 해결해야했다. 

2021년에는 전년으로부터 이월된 현금이 1318억 원, 당기 영업활동으로 창출한 현금이 467억 원에 불과한데도 배당으로 3400억 원이 지급됐다. 설비투자에도 2593억 원을 투입하다보니 회사채 발행으로 부족자금을 메워야 했다. 이 해의 연말 현금잔액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1억 원에 못미치는 8770만 원에 불과했다.
 
2022년~2024년까지는 업황 악화로 당기순손실을 냈다. 영업현금흐름이 각각 마이너스 768억 원(순유출), 157억 원, 1342억 원을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배당은 없었다. 손실이 누적되면서 자본구조 상 배당가능이익이 부족해졌다. 예전처럼 차입을 각오하고라도 배당을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말과 2024년 말 현금잔액은 각각 8748만 원, 8288만 원에 불과했다. 스타트업이라해도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현금이 바닥난 것이다. 연매출 5조 원~6조 원대에 이르는 회사의 연말현금잔액이 100억 원도 아닌 1억 원조차 안되는 수준이 되었다.
 
2025년 상반기에도 여천NCC는 2222억 원 적자를 냈다. 영업현금흐름은 마이너스 953억 원을 기록했다. 반기 말 현금잔액 136억 원은 그나마 2천억 원 유상증자 대금이 유입된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여천NCC가 처한 상황은 아래 그림과 표를 통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여천NCC가 거래업체로부터 원료를 외상매입(구매전용카드로 결제)하면 카드회사는 여천NCC에 대한 카드대금채권을 유동화한다. 이 과정에서 전자단기사채(ABSTB)를 발행한다. ABSTB로 조달한 자금은 카드회사를 거쳐 거래업체 결제대금으로 쓰인다. 
 
[컴퍼니 백브리핑] 한화-DL 폭로전과 여천NCC '묻지마 배당'의 흔적들

여천NCC가 ABSTB의 만기(대개 발행시점으로부터 1~3개월)에 맞춰 카드대금을 결제하면 이 자금은 카드사를 거쳐 ABSTB 투자자에게 상환된다. 

아래 표를 보자.

올해 1월24일 발행된 제10회 ABSTB의 만기(4월24일)시점에 여천NCC가 자체자금으로 카드대금을 갚지 못하면서 ABSTB는 차환발행되었다. 제10-1회 발행대금 100억 원이 제10회 투자자들에게 지급됐다. 

제11회 발행분 665억 원(4월30일 발행, 만기 7월30일)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만기일에 여천NCC가 카드대금을 상환하지 못하면서 제11-1회분 665억 원(만기 10월30일)이 차환발행되어 제11회분이 상환됐다.
 
[컴퍼니 백브리핑] 한화-DL 폭로전과 여천NCC '묻지마 배당'의 흔적들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제12회 발행분 635억 원도 존재한다. 이같은 구매대금 결제 말고도 연말까지 갚아야 할 차입금이 37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와 DL의 3천억 원 대여로 여천NCC는 일단 한시름 놓게 됐다.

하지만 발빠른 구조조정 없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여천NCC 뿐 아니라 업계 전체의 생존 골든타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지적은 과장이 아닌 것 같다. 김수헌 MTN 기업&경영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