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11-11 13: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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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여야의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입법 논의에서 연구개발 종사자들에게 주52시간제 적용을 제외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잼션’이 법안 통과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반도체지원 특별법안에 화이트칼라 이그잼션을 포함시킨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 특별법안 당론 추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11월 안에 반도체지원 특별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향후 여야의 반도체 지원법안 논의 과정에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국민의힘은 고동진, 송석준, 박수영 의원이 각각 마련한 반도체 특별법안의 내용을 하나로 통합하고 정부부처와 의견을 조율해 당론법안을 마련하고 11일 발의했다.
국민의힘 반도체지원 특별법안에 담긴 내용 가운데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이 꼽힌다.
이는 일정 이상 연간 임금소득을 받는 근로자들에게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미국의 제도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허용된 미국의 엔비디아는 새벽 근무와 주7일 출근에 제한이 없다.
일본도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비슷한 취지로 2018년 고소득 전문직을 노동시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고도(高度)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 IT 업계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것을 의미하는 ‘996’ 관행이 널리 자리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경쟁국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같이 근무시간을 유연화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반도체 경쟁력은 얼마나 오랫동안 집중력 있게 연구개발(R&D)에 매진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축적의 시간’ 없이 반도체 ‘초격차’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입장이다.
여기에 최근 국내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위기론이 불거지면서 공무원처럼 정해진 시간에만 근무하는 삼성전자 직원들의 문화를 두고 ‘삼무원’(삼성전자+공무원)’이라는 자조적 단어도 심심찮게 언급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지난 8월 ‘수출기업의 노동생산성 둔화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기업들은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연한 인력 운용이 필수라고 진단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포함하는 법안은 업계의 목소리를 담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우선 근로자와 회사가 ‘합의’를 이루는 것을 전제로 주 52시간 적용을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았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당사자 사이에 합의하면 주 52시간 근로시간제의 예외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적용 예외를 두기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다수당으로서 근로기본법 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은 현행 주 52시간제에서 근로시간을 더 줄이려는 방향의 정책기조를 갖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6월 직접 ‘주 4일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 (사진 왼쪽부터)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진성준 정책위의장,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민생 공통 공약 추진 협의기구 출범 회동에서 합의문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지금도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해 근무시간 연장이 가능한데 (반도체특별법안에) 왜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두려는지 모르겠다”며 “아직 정책위의장 사이에 논의가 없었고 국민의힘 법안을 자세히 들여다봐야겠지만 반도체특별법안에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담을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반도체지원 특별법안을 발의한 김태년 의원도 반도체 산업 지원과 노동시간은 별개의 사안으로 인식해 반도체지원 특별법안에 ‘주 52시간 적용 예외’를 포함시키는 것에는 부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화이트칼라 이그잼션 외에 반도체기업을 향한 정부지원 방식에 관해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반도체특별법안에 정부가 직접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 반면 민주당은 세액공제 등의 방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다만 반도체 산업에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양당 모두 공감하는 만큼 절충안을 도출해낼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지원 특별법안 논의에 ‘근로시간’ 이슈를 포함시키면 어느 직군에, 어느 정도 소득을 거두는 근로자들에게 예외를 둘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법안 논의에서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국내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삼성의 초기업노조도 지난 7일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연구개발(R&D) 분야 인력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삼성그룹 초기업노조는 입장문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근무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발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발도상국 마인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국민이 아닌 기업의 관점에서만 노동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오는 28일 전까지 여야 민생 공통공약 협의체에서 민주당을 설득하는데 노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입장문에서 “근로시간 유연화 등을 담은 국민의힘 반도체특별법 당론안 국회 제출을 환영한다”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야당 의원들을 끝까지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