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정부 '카르텔 타파' 걸고 R&D 예산 삭감했는데 정작 무용 전공자가 AI 과제 따내"
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10-08 16: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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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대체 무슨 근거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결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과거 연구현장에 있었던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억장이 무너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유상임 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방송>
이날 과방위 국감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정부가 대폭 삭감한 R&D예산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특히 물리학 박사로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까지 지낸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열변을 토했다.
황 의원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만으로 예산 폭거가 이뤄졌다"며 "이것이 운석처럼 떨어져 과학기술계 대멸종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24년도 R&D예산을 전년 대비 14.7% 삭감해 논란이 일었다. 특히 문제는 R&D 예산에서 과학자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정부의 갑작스런 R&D 예산 삭감에 따라 이 예산에 기대왔던 대학과 연구원, 기업들이 인건비 삭감에 나섰고 젊은 과학자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의원에 따르면 올해 예산삭감으로 내용 변경이 이뤄진 과제는 1만2천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중단된 과제는 217개, 이에 따른 매몰비용은 약 2천억 원으로 추산됐다.
올해 들어 8월까지 실업급여를 신청한 연구직은 1만여 명이며 이들에 대한 실업급여 지금액은 약 1600억 원이다.
이날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신민기 입틀막 대책위 공동대표는 "정부가 'R&D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따라 예산을 삭감했다고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며 "이같은 결과에 연구자들의 자부심을 떨어지고 불안감은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지난 2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졸업식에서 연설 중인 윤 대통령 앞에서 'R&D예산 삭감 반대' 구호를 외쳤다가 대통령 경호원들에게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를 들린 채 강제 퇴장당했던 과학자다.
신 대표는 예산 삭감에 따른 피해사례와 관련해 "무엇보다 인건비 삭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어느 연구자 부부의 경우 이번 삭감으로 부부가 동시에 실직하면서 급히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 신민기 입틀막 대책위원회 공동대표가 8일 세종정부청사에서 열린 과방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와 과학기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국회방송>
윤석열 정부가 R&D 예산 삭감의 명분으로 내건 'R&D 카르텔'의 실존 여부도 국감에서 도마에 올랐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갈라먹기식 R&D를 재검토하겠다",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과학기술계 카르텔 혁파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서 R&D예산 삭감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경 전 과기부 1차관은 그해 12월 'R&D 카르텔의 8가지 유형'을 발표해 논란이 됐다.
예산 삭감과 카르텔 논란으로 과학기술계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2월 조 전 차관을 교체했고 지난에는 7월에는 과기정통부 장관까지 교체했다.
조 전 차관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창윤 과기정통부 1차관은 이날 국감에서 'R&D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최민희 과방위 위원장 질문에 "공식적으로 카르텔은 없다는 것이 과기부 입장"이라며 "다만 더 효율적으로 R&D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노력은 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취임한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 역시 "R&D쪽에 이런 카르텔이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여태껏 과학기술계의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 가운데 카르텔이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조 전 차관뿐이다"고 말했다.
다만 유 장관은 최민희 위원장이 "이처럼 카르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기부 입장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느냐"고 묻자 답변하지 못했다.
효율적 예산배분과 카르텔 혁파를 외치는 윤석열 정부가 정작 줄어든 예산을 제대로 쓰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은 최근 정부예산을 타낸 신규 연구과제 가운데 오히려 카르텔이라고 볼 수 있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해민 의원은 "우리 의원실에서 초거대 인공지능(AI) 기반 심리케어 과제를 찾아냈는데 7억6천만 원 규모의 연구과제에서 수의계약으로 연구용역을 넘긴 금액이 3억 원이 넘었다"며 "이런 과제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R&D 카르텔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이 지적한 과학계 연구 과제에는 무용 전공자가 참여했다도 비판도 나왔다.
김우영 민주당 의원은 "이 과제에 참여한 김형숙 한양대 교수는 무용학과 출신인데 인공지능 기반 R&D 예산을 따냈고 이를 보란듯이 자랑하고 다닌다고 들었다"며 "R&D카르텔을 말하는 윤석열 정부가 무용을 전공한 사람한테 R&D 과제를 주는건 문제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R&D예산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정권을 막론하고 백년대계에 따라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유 장관이 새로 부임한 만큼 정권 입김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인의 입장에서 현안을 챙겨 달라"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