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북·네옴(사우디아라비아)=비즈니스포스트] 사우디아라비아 서북지역의 중심도시 타북(Tabuk)에서 홍해 연안의 샤르마(Sharma)까지 이어지는 8784번 도로는 험난했다.

150㎞가 넘는 거리의 도로는 아직 공사 중인 구간, 구불구불하고 좁은 산길로 채워져 있다.

길은 험난했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이국의 방문자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끝이 안 보이는 돌사막(Stone Desert)이 이어져 있다가, 비슷한 풍경이 지겨워질 즈음에는 헤자즈(Hejaz) 산맥이 신비로운 돌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산맥을 가로지르는 끝자락에서는 모래사막과 맞닿은 홍해 바다가 선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해안을 따라 펼쳐진 모래사막은 광활했다. 하지만 그 광활함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공사 현장이 황무지 위에 빼곡했다. 

이제는 ‘네옴(Neom)’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고 있었다. ◆ 서울의 44배에 이르는 광활한 네옴, 지역 전체가 공사 현장

‘네옴 시티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조성 사업이다. 국가적 계획인 ‘비전 2030’의 일환이며 2017년에 처음 발표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 아카바 만에 인접한 홍해 연안 일대 지역에 미래형 신도시가 구축된다. 거주 인구는 2030년까지 100만 명, 장기적으로 1천만 명이 목표다.

세부적으로는 직선 도시 ‘더 라인(The Line)’, 산악 도시 ‘트로제나(Trojena)’, 바다 위의 도시 ‘옥사곤(Oxagon)’ 등 건설 계획이 포함돼 있다.

프로젝트 규모가 워낙 거대해 네옴 일대는 현재 지역 전체가 공사현장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네옴 지역의 면적은 2만6500㎢로 서울 면적(605.2㎢)의 44배에 이르고 전라남·북도를 합친 호남지역 면적(2만937㎢)보다도 넓다. 그만큼 드넓은 지역을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공사가 네옴에서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은 토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라 네옴 인근 도로에는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모래 등을 나르는 트럭들이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공사의 규모를 고려하면 현장은 물론 프로젝트 관리를 위해 투입되는 인력 등 상주하는 인원의 규모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네옴 지역 곳곳에는 네옴 프로젝트 관계자들의 거주를 위한 ‘네옴 커뮤니티’(Neom Community)가 건설돼 있다.

네옴 커뮤니티는 대부분이 간이건물로 이뤄져 있기는 했으나 수백 동의 건물에 상점, 학교, 소방서, 행정시설 등까지 들어서 있어 각 커뮤니티의 규모는 어지간한 마을 이상이다.

네옴 일대는 드나드는 인원에 대한 통제도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공사 현장은 물론 네옴 커뮤니티 등 지역 일대의 시설 어느 곳을 접근해도 반드시 경비 담당자가 나타나 “출입을 위한 증명을 제시하라”고 요구해 왔다. ◆ 한국 기업도 네옴에서 기회 엿본다,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 중인 현대자동차 주목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네옴 시티 프로젝트의 진행을 위해 세계 각 기업에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11월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가 직접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며 네옴 프로젝트 참여를 논의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국내 주요 건설사는 네옴 프로젝트 사업의 일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네옴 시티 프로젝트는 단순히 건설사에게만 열린 기회가 아니다.

네옴 시티는 단순히 현재 시점에서 거론되는 스마트시티를 넘어 모든 인프라가 인공지능(AI)로 운영되는 세계 첫 인지도시(Cognitive City)로 계획됐다. 인공지능, 정보통신, 에너지 등 폭넙은 분야에서 기업의 참여 기회가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현대차그룹이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네옴 시티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 역량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화석 연료를 넘어 수소 에너지를 활용하는, 네 바퀴 달린 자동차를 넘어 도심 항공 솔루션까지 해결할 수 있는 기업으로 현대차그룹을 바꾸려 한다. 완성차 제조기업을 넘어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네옴 시티 프로젝트는 정 회장의 미래 청사진을 시험해 보이기에 최적의 장소일 수 있다.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대규모 도시 내에서 자동차를 보이지 않게 하면서도, 지하터널을 통해 여객 운송과 물류 등 모빌리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더 라인’ 등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래 모빌리티 기술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민지 현대차그룹 스마트시티사업추진팀 팀장은 “도시는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모든 솔루션을 집합해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인 만큼 새롭게 지어지는 미래형 도시들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고민하고 있다”며 “네옴 시티 역시 회계적 수익이라는 당장의 성과보다는 미래 비전에 중점을 두고 그룹 차원에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비관론 커진 네옴 시티, 프로젝트의 향방은?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 한국의 기업들도 참여하는 상황인 만큼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은 이들 기업에 미칠 영향도 작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네옴 시티 프로젝트의 미래를 놓고는 불안한 시선이 커지는 상황으로 보인다.

특히 500m 높이의 장벽을 200m 두께로 170㎞를 잇겠다는 직선 도시 ‘더 라인’의 계획을 놓고는 발표 당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집중됐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롯데월드타워(554m)의 높이에 육박하는 장벽을 서울에서 강릉까지 거리만큼 이어 놓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개된 더 라인의 조감도를 보면 바람에 따른 영향, 내부 채광, 안전 대비 등 기술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리적, 기술적 문제에 더해 국제유가의 영향으로 2022년 이후 적자를 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상황도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상황과 반대로 네옴 프로젝트의 사업비는 첫 발표 당시 5천억 달러에서 현재 1조5천억 달러 수준으로 늘었다. 최종적으로는 2조 달러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여겨지는 사업비를 감당하는 일은 석유로 막대한 부를 쌓아온 사우디아라비아라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가 2027년 아시안컵,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 2030년 엑스포, 2034년 월드컵 등 각종 국제 행사를 유치하면서 돈 쓸 곳은 더욱 많아졌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벌여 놓은 사업의 우선순위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는 올해 6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네옴 시티 프로젝트가 재검토되고 있으며 일부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진행되겠지만 일부는 지연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수많은 불안 요소들이 네옴 시티 프로젝트에 크고 작은 변화는 불러올지라도 프로젝트의 진행 자체까지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태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한-사우디인프라협력센터 협력관은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추진 중인 각종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놓고 조정을 진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특히 네옴 시티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트로제나, 옥사곤, 신달라 등에 집중하고 더 라인은 후순위로 밀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네옴 시티 프로젝트는 당초 계획보다 지연될 것은 분명하고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현재 분위기에서는 진행되더라도 사업 규모가 일부 축소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미 진행된 다수의 인프라 공사가 있기 때문에 전면 중단할 가능성은 낮게 본다”고 덧붙였다. 

한때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제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네옴 시티 프로젝트.

프로젝트는 어떻게 변하며 흘러갈 것이며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이상호 기자 (다음 편으로 이어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