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실적과 재무 악화로 위기, '엔비디아와 TSMC 모두 추격' 무리수에 그쳐

▲ 인텔이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와 생산 분야에서 모두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무리한 전략으로 실적과 재무 악화 위기에 놓였다.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홍보용 사진.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기업 인텔이 실적 부진과 재무 악화로 위기에 놓였다. 투자 축소와 배당 중단, 인원 감축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회복 전망은 불투명하다.

인텔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며 엔비디아와 TSMC 등 해당 분야 상위 기업을 무리하게 추격해 온 전략이 결국 실패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이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해야 하는 비용 부담은 지나치게 커진 반면 실제 사업 성과는 언제부터 가시화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텔이 1일(현지시각) 콘퍼런스콜을 통해 밝힌 2분기 매출과 3분기 전망치는 모두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2분기 순이익은 16억 달러(약 2조2천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수천 명의 인력을 감축하고 주주 배당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긴급 대책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설비 투자 규모도 축소하기로 했다.

내년까지 모두 1만5천 명 안팎의 해고가 진행되는데 이는 주요 사업부 전체 임직원 수의 15%에 가깝다. 매우 공격적인 수준의 구조조정을 예고한 셈이다.

인텔 재무상황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장외거래에서 인텔 주가는 한때 20% 가까운 낙폭을 보였다. 당분간 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겔싱어 CEO는 인텔 임직원들에 “투자 비용은 지나치고 수익성은 너무 낮아 실적과 재무구조 악화를 피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서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인텔의 실적 부진은 인공지능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며 주요 사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텔은 생성형 인공지능 산업의 발전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관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적으로 찾아 육성해 왔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서버용 반도체 분야에서, 대만 TSMC는 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및 패키징 분야에서 부동의 1위 기업으로 자리잡아 큰 수혜를 보고 있었다.

인텔은 이러한 두 기업을 모두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두고 자체 인공지능 반도체 설계 및 상용화와 파운드리 첨단 미세공정 기술 개발, 시설 투자에 모두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인텔 실적과 재무 악화로 위기, '엔비디아와 TSMC 모두 추격' 무리수에 그쳐

▲ 미국 오리건주에 위치한 인텔 DX1 공장 및 연구개발센터.

엔비디아는 반도체 설계를, TSMC는 생산을 전담하는 반면 인텔은 이를 모두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춘 만큼 이중으로 수혜를 볼 가능성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인텔이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수요 위축과 경쟁 심화, 모바일 시장 진출 실패로 장기간 성장 정체를 겪던 상황에서 이는 다소 무리한 전략일 수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더구나 상위 기업인 엔비디아와 TSMC가 각각 절대적인 지배력을 자랑하던 인공지능 서버용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에서 동시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인텔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충분한 기술력을 쌓고 시설 투자 효과도 반영된다면 성장 기회를 노릴 수 있지만 지금의 이익 체력에서 벌써부터 한계를 맞게 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엔비디아의 분기 매출이 이미 인텔의 2배 수준이고 한때 인텔의 후발주자로 불리던 AMD 시가총액도 인텔을 큰 폭으로 웃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TSMC도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사실상 유일무이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어 인텔이 단기간에 파운드리 고객사 물량을 빼앗아 오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겔싱어 CEO는 장기 관점에서 인텔의 전략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파운드리를 비롯한 주요 사업에서 경쟁사를 따라잡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다수의 대형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에 예정된 투자 규모만 1천억 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지금의 재무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인텔이 핵심 성장사업으로 앞세우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도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겔싱어 CEO는 콘퍼런스콜에서 파운드리 사업 전략을 언급하며 “한 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는 결심을 두고 있다”며 “미래 성장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그는 파운드리 고객사의 실제 수주 물량을 확보하기 전까지 투자 속도를 조절하겠다며 시장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인텔은 그동안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넘고 파운드리 2위 기업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앞세워 왔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다소 낮아진 것으로 파악된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