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내 배터리 양극재업체들이 실적 부진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양극재업체들은 전방 전기차시장의 성장세 둔화와 판매가격 하락 등 중첩된 악재를 맞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시장의 회복과 함께 양극재업황도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판단하고 역량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배터리 양극재 수요 둔화에 가격 하락 '겹악재', K양극재 경쟁력 강화 쉼 없다

▲ 국내 배터리 양극재업체들이 실적 부진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는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그림은 양극재에 쓰이는 주요 원소 이미지.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엘앤에프,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등 양극재업체들은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부진한 실적을 이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주요 양극재업체 대부분은 영업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엘앤에프는 2023년 4분기 연결 영업손실이 2804억 원에 이르렀다. 4분기 손실 폭이 큰 탓에 연간 기준으로도 영업손실 2223억 원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해 4분기 연결 영업손실 654억 원을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2023년 전체 기준으로는 350억 원의 영입이익을 냈지만 양극재와 음극재를 포함한 에너지소재 부문에서는 연간 기준으로도 영업손실 117억 원을 거뒀다. 

에코프로비엠은 아직 지난해 잠정실적 공시를 내지 않았지만 증권업계에서는 에코프로비엠 역시 지난해 4분기에 영업손실을 냈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최근 증권사들이 제시한 에코프로비엠의 2023년 4분기 영업이익 추산치는 상상인증권 마이너스 102억 원, NH증권 마이너스 373억 원, 유진투자증권 마이너스 425억 원이다. 

전기차시장의 성장 둔화는 양극재업체들의 실적 부진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높은 금리 수준과 유럽의 전기차 보조금 축소 등에 따라 전기차 수요가 감소한 데다 전기차시장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기 전 '캐즘(일시적 수요 침체)'에 도달하며 수요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미국 완성차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당초 세웠던 전기차 증설 계획을 잠정 철회하거나 뒤로 늦추는 등 전기차 수요 둔화에 발맞춰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런 전방산업의 기류 변화는 후방의 배터리 셀 제조사나 양극재 등 소재업체들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양극재 원료 금속들의 가격 하락세도 실적에 직접적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양극재 제품 가격은 금속 가격에 연동되기 때문에 금속 가격이 하락하면 양극재업체들은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게 돼 마진이 축소된다. 

기존 재고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도 영업이익 수준을 크게 낮추는 요인이다.  

다만 양극재업체들은 이런 업황 악화를 단기적 성장통으로 보고 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큰 흐름을 뒤엎을 수는 없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전기차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며 양극재업황도 호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양극재업체들은 미래를 대비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엘앤에프는 양극재 중간소재 생산기반을 구축하며 경쟁사들보다 뒤처진 공급망 역량을 보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올해 1분기 중 LS그룹과 합작 설립하는 전구체 생산시설 착공에 들어가 2025년 완공 및 시범 가동에 들어간다. 

기존 하이니켈 양극재 외에도 리튬인산철(LFP) 양극재와 음극재 등으로 사업영역 다변화도 추진한다. 

엘앤에프는 2월1일 열린 2023년 실적설명회를 통해 지난해 리튬인산철 양극재의 파일럿 생산시설을 완공한 뒤 시제품을 고객사에 공급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튬인산철 양극재의 양산 목표시점은 2025년 말로 잡고 있다. 

엘앤에프는 지난해 일본 미쓰비시케미컬과 차세대 음극재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협력방식을 논의해왔는데 올해는 합작법인 설립을 검토하는 등 보다 가시적 협력 성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측은 이르면 내년부터 음극재 양산과 납품이 가능한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고부가제품인 단결정 양극재의 양산과 생산성 안정화를 서두르며 시장 확대를 꾀한다. 

단결정 양극재는 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 등 여러 금속을 하나의 입자형상(One-body)으로 만든 소재다. 
 
단결정 양극재를 사용하면 가스 발생이 적어 안정성이 높아지고 배터리 수명도 기존보다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단결정 양극재는 기존 양극재보다 밀도를 높일 수 있어 배터리 용량이 커지고 이에 따라 주행거리도 늘어난다.  

지난해까지는 단결정 양극재의 수율이 부진했던 탓에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수율 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진행되고 있어 올해부터는 단결정 양극재 사업이 궤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퓨처엠 측은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는 하이니켈 단결정 양극재의 생산성 향상과 함께 판매량도 증대하고 있어 올해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인조흑연 음극재 사업도 본격화한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극재사업을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데 기존 천연흑연 음극재뿐 아니라 국산화율이 높은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회사 포스코엠씨머티리얼즈를 통해 인조흑연 원료인 침상코크스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제철공정 부산물인 콜타르를 활용해 침상코크스를 만들어 포스코퓨처엠에 공급한다. 

포스코퓨처엠은 올해 인조흑연 음극재 연산 1만8천 톤 생산체계를 완비하고 2025년까지 생산량을 두 배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에코프로비엠도 제품 다변화와 함께 공급망 역량을 더 공고히 하며 사업 경쟁력을 강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기존 하이니켈 양극재 외에도 저가형 모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위해 하이니켈보다 저렴한 미드니켈(OLO),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공급망 강화는 에코프로그룹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룹 지주사 에코프로는 최근 글로벌자원실을 신설해 양극재 생산에 필요한 핵심광물 확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신설 글로벌자원실은 니켈과 리튬 등 핵심광물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북미 배터리재활용 시장에 진출해 원료 조달과 중간소재, 양극재, 배터리재활용에 이르는 순환체계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최근 미국 배터리재활용업체 서바솔루션즈(Cirba Solutions)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서바솔루션즈는 폐배터리에서 니켈 등 주요 광물을 추출하는 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다.

에코프로는 서바솔루션즈와 협력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체계도 한층 강화해 나간다.

정회림 에코프로 경영전략실장은 “서바솔루션즈의 프리미엄 재활용 관련 노하우를 통해 배터리 재활용부터 양극재 생산까지 아우르는 에코프로의 폐쇄적 순환체계(클로즈드 루프 시스템)의 북미 진출을 도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