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 기자 hjkim@businesspost.co.kr2023-10-06 15:08:36
확대축소
공유하기
▲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기조가 야당의 반발에 부딪히며 거센 파열음을 내고 있다.
35년 만에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지 못하면서 사법부 수장 공백 장기화가 현실화됐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장관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인사를 둘러싼 대립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6일 국회 본회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결과 윤 대통령이 지명한 이균용 후보자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원내 1당인 민주당이 부결로 당론을 정하면서 총투표수 295표 가운데 반대 175표, 찬성 118표, 기권 2표의 결과가 나왔다.
사법부 수장 장기공백 사태가 일어나게 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난 목소리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부적절한 인사로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본회의에서 대법원장 임명 동의가 부결된다면 이는 오롯이 부적격 인사를 추천하고 인사 검증에 실패한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라며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후보자가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후보를 보내라”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를 요구하며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수용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 등을 여야 협치의 기본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0월6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 원내대표는 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두 가지를 분명히 말씀드리는 건 한동훈 장관을 파면하고 국회가 보낸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에 대통령이 다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정 기조를 전환한다면 저는 대통령과 충분히 협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수용,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표결됐을 때도 ‘선조사·후조치’를 내세우며 이를 거부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이번 이균용 후보자 인준 부결의 책임을 야당에 돌리면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표결 직후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부결됐다”며 “반듯하고 실력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그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야당은 이들 역시 장관으로서 부적격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이대로 임명을 강행한다면 인사를 둘러싼 갈등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윤 대통령이 내년 총선 등을 앞두고 추가 개각을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인사 갈등이 심해지는 일은 윤석 대통령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인사를 진행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면 11월10일에 임기를 마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 소장의 후임을 선정하는 절차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 소장 역시 대법원장과 같이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면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법관 가운데서는 안철상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의 임기가 내년 1월에 마무리된다.
대법관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돼 있다.
대법원장에 이어 헌법재판소 소장, 대법관 인사까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은 ‘사상 최악의 사법 공백’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다만 정치권 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 기조를 전면적으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0월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표결을 거쳐야 하는 인사는 어쩔 수 없으나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없는 장관 인사 등은 기존처럼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5일 신원식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했다. 재송부 시한은 6일까지 단 이틀이다. 윤 대통령이 신 후보자의 임명 강행을 사실상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나온다.
유인촌 후보자 역시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가 청문회에서 문제가 되긴 했으나 유 후보자가 이와 관련해 수사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해당 사안으로 유 후보자 임명을 보류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이날 본회의가 마무리된 후 전체회의를 열어 유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에는 적격·부적격 의견이 병기됐다.
김행 후보자의 임명 또한 강행 쪽에 무게가 실린다. 김 후보자는 5일 열린 청문회에서 위키트리 주식파킹·혐오장사와 관련해 맹공을 받았다. 김 후보자가 청문회 도중에 자리를 떠나 청문회가 파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당은 김 후보자를 적극 방어하며 임명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양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인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윤석열 대통령이 김 후보자에 장관 임명장을 줘도 된다고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당의 공세에) 한 방이 없었다”고 답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또한 6일 논평을 통해 “회의를 공정하게 주재해야 할 여가위원장이 오히려 ‘후보직을 사퇴하라’며 막무가내식 회의를 진행했다”며 인사청문회 파행의 원인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권인숙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에게 돌렸다.
윤석열 정부에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이 강행된 장관급 인사는 현재까지 17명이다. 인사 도중 자진 사퇴한 사례는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모두 네 명이었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