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유럽 입지 '단단', EU의 중국 견제 더해져 비중국 세계1위 '청신호'

▲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업체들이 유럽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가파른 추격에 직면했지만 선제적으로 구축한 유럽 내 생산기반을 토대로 여전히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한 K배터리 업체들에게 유럽시장은 중국과 글로벌 배터리업계 주도권 쟁탈전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 곳이다. 일단 글로벌 3대 전기차시장 가운데 하나로 시장규모가 가장 크다. 

나머지 거대 전기차시장 두 곳(중국, 미국)은 각각 중국과 한국 한쪽에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반해 유럽시장은 비교적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이 이뤄진다. 유럽시장에서 진정한 의미의 배터리업계 최강자가 가려진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유럽시장에서 중국 배터리업체들이 최근 기세를 올리고 있다는 점은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업체들로선 경각심을 품고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하는 K배터리 업체들은 유럽시장에 미리 구축해둔 단단한 생산기반 덕분에 중국기업들에게 쉽사리 우위를 내어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자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중국 배터리 견제에 나서는 점은 LG에너지솔루션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지키는데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일 배터리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 자료를 분석해보면 CATL을 비롯한 중국기업들의 유럽 배터리시장 점유율은 2020년 14.9%에서 2022년 34.0%로 19.1%포인트 높아졌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한국기업의 유럽시장 점유율이 2020년 68.2%에서 2022년 63.5%로 후퇴한 것과는 대조된다. 

특히 CATL 같은 중국기업들은 유럽시장에서의 약진에 힘입어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7월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용 배터리시장에서 점유율 28.2%로 선두 자리를 지켰다. 다만 2위 CATL은 점유율 27.6%를 나타내며 LG에너지솔루션을 턱밑까지 쫓아왔다. CATL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09.3%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유럽시장에서 거둔 성과로 추정된다.

중국 배터리기업들이 유럽시장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키울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는 가격 경쟁력이 꼽힌다. 중국기업들은 K배터리업체들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삼원계배터리와 비교해 성능은 다소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우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할 필요성이 작지 않은 만큼 중국기업의 저가 배터리를 채택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게다가 CATL을 비롯한 중국업체들은 리튬인산철 배터리의 고질적 문제로 거론되던 주행거리와 충전속도를 개선한 대폭 기술적 성과도 과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업체들로서는 결코 달가울 리 없는 소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2021년 23%에서 2030년 4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K배터리 업체들의 저력을 고려하면 유럽시장에서 중국기업들에게 쉽사리 우위를 내어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K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유럽에서 탄탄한 생산기반을 구축해 놓았다. 특히 맏형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내 생산능력은 경쟁사들과 비교해 독보적인 수준이다.  
 
LG엔솔 유럽 입지 '단단', EU의 중국 견제 더해져 비중국 세계1위 '청신호'

▲ LG에너지솔루션의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있는 배터리공장 전경. < LG에너지솔루션 >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을 통해 현재 연산 7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춰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유럽 내 이렇다 할 생산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중국업체들은 물론 유럽시장에 제법 많은 공을 들여온 국내 다른 경쟁사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다른 K배터리 업체들의 유럽 내 생산능력을 살펴보면 삼성SDI는 헝가리 괴드 공장을 통해 연산 30GWh, SK온은 헝가리 코마롬 공장을 통해 16.5GWh 생산체제를 갖춰 놓은 것으로 파악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진출 시기도 2016년으로 경쟁사들보다 훨씬 이른 편이다. 그만큼 유럽 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공장의 수율과 가동률을 정상화하는 데까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터리사업은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데만도 적어도 2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공장 완공 뒤 가동률과 수율을 안정화하는 데까지는 4년가량이 더 소요될 수 있다. 

CATL을 비롯한 중국기업들이 유럽 내 생산능력 확대에 착수한다 해도 단기간 내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업체들의 생산능력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업체들은 유럽 내에서 추가로 증설을 추진하게 된다면 이미 구축한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축적한 공정상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가동률과 수율 정상화까지 걸리는 시간과 노력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뿐 아니라 한국, 미국, 중국 등 글로벌 배터리 공장의 수율이 업계에서 안정화 단계라고 평가하는 90% 이상을 웃도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유럽에서 중국 기업을 향한 견제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LG에너지솔루션에게는 비중국 글로벌 시장 1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13일 정책연설에서 중국으로부터 유럽연합 역내에 수입되는 전기차에 대해 반보조금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해 유럽시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도 역내 생산자 보호를 위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을 향한 징벌적 관세 부과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 대상에는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도 포함될 수 있는 만큼 유럽연합의 중국 전기차 견제 기류는 중국 배터리의 유럽 진출을 차단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유럽연합으로서는 한국 업체들과 협업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 될 전망”이라며 “이와 같은 흐름에서 가장 큰 수혜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프랑스 정부가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도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K배터리 업체들에게는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은 프랑스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도 불린다. 탄소발자국(전기차 생산 과정 전반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평가해 보조금 지급 기준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유럽과 비교해 화석연료의 전력 비중이 높은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게 되면 탄소발자국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아시아 지역에서 만든 전기차를 배를 통해 프랑스까지 운송한다고 가정하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도 탄소발자국에 포함된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배터리와 같은 핵심 부품을 생산하는 데 따른 탄소배출량 역시 유럽 역내에서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분석되는 만큼 프랑스에 전기차를 판매하려고 한다면 유럽 내 배터리 생산기반을 선제적으로 구축해 놓은 K배터리 업체들의 제품을 채택할 유인이 전보다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업체들이 유럽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제품 대부분은 유럽 완성차업체들에게 공급할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유럽의 보호주의 강화 기조는 LG에너지솔루션을 필두로 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에게는 반사이익을 누릴 호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