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와 관련 무관용 처벌을 강조하면서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배임과 직무유기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검단사고로 토지주택공사가 가장 엄중한 수준의 처분과 시정조치를 받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토지주택공사가 정부의 주택정책사업을 도맡고 있는 만큼 엄벌에 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정부가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와 관련 무관용 처벌을 강조하면서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기장하고 있다.
29일 국토부 등에 따르면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와 관련 토지주택공사의 관리감독 등 지휘 책임, 각 관련 담당자의 책임 등에 관한 조사가 안팎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철근누락 부실시공 사태와 관련 토지주택공사 본사 등에 압수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관특혜를 비롯한 담합 관련 위법행위를 들여다보고 있고 감사원 조사도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토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가 발표한 검단아파트 사고 원인 보고서에 따르면 발주처인 토지주택공사는 설계서 검토 및 승인과정과 품질관리계획서 승인 및 점검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28일 ‘LH 부실시공 근절방안 마련을 위한 좌담회’에서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18항을 들어 인천 검단아파트 설계오류와 붕괴에 발주청인 토지주택공사와 국토부의 직접적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기술진흥법 제62조는 건설공사의 안전관리에 관한 조항이다. 발주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법과 절차에 따라 설계의 안정성을 검토하고 그 결과를 국토부 장관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밖에도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는 설계와 시공, 감리 등 현장 전반 관리감독에 총체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및 수사 결과에 따라 토지주택공사 내부 담당 임직원에 관한 징계, 나아가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토지주택공사는 인천 검단아파트 외에도 전국 발주 공공아파트 현장에서 ‘철근누락’ 단지가 무더기로 적발되면서 전관특혜 등 각종 부정부패 혐의도 받고 있는 만큼 대대적인 조직 개편 등 대수술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원 장관은 27일 검단아파트 사고 관련 회의에서 GS건설에 현행법상 최대치인 영업정지 10개월 처분을 추진한다는 결정을 발표한 뒤 토지주택공사 처분을 놓고는 “오늘 발표와 별개 차원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 장관은 다음날 국토부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도 “발주청인 토지주택공사를 별도로 들여다보고 있고 사업구조 등과 관련해 근본적 검토를 하고 있다”며 대대적 조직개편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전관특혜 부분에서는 토지주택공사와 국토부가 함께 강도 높은 수술, 외부로부터 개혁을 진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다.
정부는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로 촉발된 공공아파트 부실시공과 감리, 전관특혜 문제 등 건설이권 카르텔 혁파 문제와 관련해 올해 안에 토지주택공사 혁신방안을 발표한다는 방침도 세워뒀다.
다만 토지주택공사는 정부 주택공급, 주거복지, 신도시 개발 등을 도맡고 있는 조직이다 보니 대대적 조직개편 및 축소를 감행하면 정책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한 ‘딜레마’는 여전하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을 살펴보면 국민 주거안정부분 예산을 36조7천억 원 배정해 올해 본예산(32조6천억 원)보다 4조2천억 원 늘렸다.
앞으로 5년 동안 공공주택 100만 호 공급목표 달성을 위해 공공주택 20만5천 호를 공급한다는 세부계획도 내놓았다. 공공임대와 공공분양 둘 다 공급물량을 기존보다 각각 8천 호, 1만4천 호 높여잡았다.
남양주왕숙, 하남교산, 인천계양 등 3기 신도시 사업도 올해 하반기 8조2천억 원 규모의 발주를 진행해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이미 토지주택공사는 철근누락 아파트 사태로 전관업체 용역절차를 전면 중단하고 각종 수사 등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10월 착공 준비에 들어가는 3기 신도시 사업을 비롯한 주택공급 사업이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앞서 2021년 토지주택공사 임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사태 때에도 정부의 혁신안이 같은 이유로 ‘반쪽짜리’에 그쳤던 전례가 있다.
당시 정부는 토지주택공사를 향한 국민적 공분과 강력한 개혁 요구에 조직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땅 투기 혐의가 불거지고 3개월여 뒤 나온 정부의 혁신방안은 임직원 재산공개 의무화, 투자목적 토지취득에 관한 인사상 불이익 등 임직원 징계 관련 대책에 치우쳤다.
직접적 문제가 된 공공택지 입지조사 등 일부 업무를 다른 기관으로 이전하기는 했지만 토지개발, 주거복지 등 핵심기능은 여전히 토지주택공사에 남았다.
비대한 조직 슬림화를 위한 직원 20% 감축 등 구조조정 계획도 이후 주택공급 확대 정책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원 장관은 5월 인천 검단아파트 사고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행정체계, 감리제도 등 전반적으로 허술함이 있는지 살피겠다”며 “위법행위가 발견되면 발주청인 토지주택공사와 시공사인 GS건설은 무거운 책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27일 검단아파트 사고 관련 회의에서 GS건설에는 현행법상 최대치인 영업정지 10개월 처분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장관 직원인 영업정지 8개월은 과징금으로 대신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