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시작된 서울 아파트의 역전세 현상은 올해 하반기와 2024년 하반기에 더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 등 부동산 매물 정보가 게시된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올 상반기에 전세 계약을 맺은 서울 아파트 가운데 절반 이상이 2년 전보다 전세 값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올해 임대인들이 주요 은행과 주택금융공사에서 전세보증금 반환 목적으로 새로 받은 대출 규모가 이미 4조6천억 원을 넘어섰다. 역전세가 일어나자 빚을 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본격적인 역전세가 올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몰려온 역전세 대란(大亂), 폭증하는 전세보증금반환 대출
부동산R114는 12일 2021년 상반기에 거래된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6만5205건(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기준) 가운데 올해 1~6월까지 동일 단지·면적·층에서 1건 이상 거래가 발생한 3만7899건의 보증금(최고가 기준)을 비교한 결과 2만304건이 직전 계약보다 전세 값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2년 전보다 전세 값이 하락한 거래의 보증금 격차는 평균 1억152만 원이었다. 집주인 입장에선 계약갱신 또는 신규 계약을 하면서 기존 보증금보다 평균 1억 원 이상이 더 들었다는 것인데 이 돈은 대출을 받거나 자기 돈을 들여 마련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세보증금이 비쌀수록 역전세가 심했다. 서초구가 평균 1억6817만원으로 가장 컸으며 강남(1억6762만원)·송파(1억4831만원)·용산구(1억1780만원) 순이었다.
역전세로 인해 전세보증금을 돌려 줄 돈이 모자란 집주인들은 대출을 받아 전세보증금을 반환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4대 은행과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신규로 취급한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은 무려 약 4조6천934억 원으로 집계됐다.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신규로 취급한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은 약 2조6천885억 원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6천966억 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는 지난 1월 말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수요가 분산된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특례보금자리론 유효 신청 금액은 2조49억 원으로 집계됐는데 특례보금자리론에서 취급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은 DSR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등 조건이 좋아 대출수요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임차보증금 반환목적의 보금자리론 공급액은 작년 한 해 8천2억 원에 불과한 반면 올 5월까지 지난해 전체 공급액의 약 2.5배 넘는 금액이 대출로 풀렸다.
본격적인 역전세난은 이제부터 시작?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은 본격적인 역전세난이 이제부터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값은 2021년 12월 103.5를 기록해 2003년 11월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즉, 올해 하반기로 갈수록 역전세난이 정점으로 치달을 확률이 매우 높은 것이다.
부동산R114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에 계약된 서울 아파트 7만2295건 가운데 올해 상반기에 같은 단지·면적·층에서 거래된 2만8364건을 분석한 결과 현재의 전세 값 수준이 유지된다면 하반기 계약건의 58%(1만6525건)가 역전세 위험이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부동산R114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집주인이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도 차액도 평균 1억3153만원으로 상반기보다 3천만 원 가량 늘어난다.
한국은행도 역전세난의 습격에 대해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국내외 경제 동향 및 전망'에 수록된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면 깡통전세 및 역전세의 실상이 잘 드러난다.
이 리포트에 따르면 기존 전세가격이 현 매매가격보다 높은 '깡통전세 위험가구'는 16만 가구, 전세가격 하락으로 기존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진 '역전세 위험가구'는 102만 가구를 넘어섰다.
특히 충격적인 건 위험가구의 비중이 전국적으로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2년 1월 잔존전세계약 가운데 2.8%(5.6만호)에 머물던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이 올해 4월에는 8.3%(16.3만호)로, 2022년 1월 25.9%(51.7만호)에 머물던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올해 4월에 52.4%(102.6만호)로 각각 폭증한 것이다.
또한 깡통전세 상위 1%는 집값하락으로 현 매매가격이 기존 전세가보다 최대 1억 원이나 낮았고 역전세 상위 1%가 세입자에게 돌려줘야하는 전세보증금 차이는 무려 3억6000만원까지 벌어졌다.
앞으로는 더 암담하다.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에 따르면 4월 현재 깡통전세 계약 중 금년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만기도래하는 비중이 각각 36.7%, 36.2%며 역전세는 29.3%, 30.8%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 수치조차 신고된 거래만을 대상으로 추정한 잔존 전세계약 수(지난해 평균 약 200만 건)가 전체 잔존 전세계약 수(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약 325만건)에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과소추계된 것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올 하반기 입주 예정인 아파트 물량만 해도 16만6000여 가구로 역대급이다. 빌라나 연립 등의 물량까지 가세하면 공급이 차고 넘치며 넘치는 공급은 역전세난을 가중시킬 재료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DSR완화를 통한 대출확대가 역전세 대책일 순 없어
역전세난이 가시화하자
윤석열 정부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역전세로 인해 부동산 시장과 국민의 경제생활에 큰 혼란이 있어선 안 된다는 문제 인식 아래, 전세금 반환 보증과 관련된 대출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임대인)을 위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추 부총리를 비롯한
윤석열 정부의 생각은 ‘집주인들의 DSR규제를 완화해 대출을 확대하고 집주인들이 이를 통해 모자란 전세보증금을 빚을 내 반환하도록 돕겠다’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주요 선진국 가운데 선두를 달릴 정도로 가계부채가 많은 대한민국에서 대출완화로 역전세란을 막는 다는게 맞는 일인지 회의적이다. 대출요건을 엄격하게 하겠다고는 하지만 전세 퇴거 자금용 주담대(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는 언제라도 집값 상승의 연료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이후 8년 동안의 대세상승을 거치면서 어떤 근거와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수준으로 상승한 부동산 가격은 자연스러운 가격조정과 기간조정을 거치는 것이 옳다. 인위적인 정책은 성공하기도 어렵고 후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땅을 둘러싼 욕망과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토지정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투기공화국의 풍경’을 썼고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을 함께 썼다. |